[뉴스줌인] 가상화폐 '척화비' 세우는 정부...“일단 규제부터”

고영욱 기자

입력 2017-12-06 14:35  



1871년 조선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고 나라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사이, 변화하는 세계 흐름을 놓쳐 수십 년 간 수모를 겪은 뼈아픈 역사가 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전환기의 한 가운데 있다.

새로운 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넘쳐난다. 가상화폐도 그중에 하나이다.

실물도 없고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 화폐는 국경을 넘어 빠른 속도로 유통 중이다. 역사를 떠올린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정부는 이해와 활용 대신 규제를 선택했다.

지난 4일 가상화폐 합동대응반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상화폐 열풍의 근원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단 신기술에 대한 기대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본질에 대해 아직 명확히 이해를 못했지만 일단 부작용 현상에 초점을 맞춰 규제 하겠다”는 의미다. 뭐든 규제하면 문제가 없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둬야 직성이 풀리는 이른바 규제 만능주의식 사고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답답함이 크다.

이 마저도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만 확인하고 “불법 거래에 엄정대응 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응만 되풀이 한 채 끝났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요국 대응방향을 주시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기존 금융시장이라면 정부의 이 같은 신호에 강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지난 2011년 국내 파생상품시장을 보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65조5천억원으로 세계 시장 순위 1위였다. 하지만 2014년부터는 세계 12위로 주저앉고 만다.

정부가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해 규제를 늘린 영향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11년 이후 5년간 거래량 감소율은 79.76%를 기록했고, 전 세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파생상품시장 거래비중은 2011년 15.73%에서 2015년 3.22%까지 순식간에 감소했다.

하지만 가상화폐계의 기축통화 격인 비트코인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1비트코인에 1400만원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가상화폐 자체가 정부와 중앙은행 같은 중앙 집중 시스템을 배제하기 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상화폐 거래규모는 하루 최대 6조원으로 세계 3~4위 수준이다. 시장 참여자는 10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잠재력이 큰 시장기반을 육성하는 대신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활성화됐다고 판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값이 올 초 보다 15배 가량 뛴 것을 두고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의 사행성 투기문제가 심각하다고 평가한다.

국무총리의 “가상화폐가 투기화하는 현실을 이대로 두면 심각한 왜곡 현상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 같다”는 말에 합동대응반이 꾸려지고 추가 대책 논의가 그렇게 시작됐다.

정부의 입장은 “가상화폐는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합동대응반 주관부서도 기존 금융위원회나 한국은행 등 금융·통화 당국에서 법무부로 이관 됐다.

앞서 지난 9월 관계기관 합동TF에서 법무부는 가상화폐 사기 집중단속 역할만 주도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법무부 해당 TF관계자는 “이번 결정의 의미는 정부가 앞으로 불법거래와 사행성 투기규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청년창업 콘서트를 찾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 말이 무색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지난 4월 일본 금융청이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한 이후 가상화폐 제도권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는 한편, 가상화폐 구매(환전)시 부과되는 소비세를 폐지해 가상화폐 거래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또 내년부터 가상화폐를 기업회계기준상 자산으로 분류해 재무제표에 기록하게 된다. 당장 오는 11일에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작되고 일주일 뒤인 18일엔 시카고선물거래소(CME)에서도 거래가 가능해진다.

일본 역시 가상화폐 선물거래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관리할 시점에 이른 것은 맞지만 무조건적인 규제는 능사가 아니”라며 “건전한 거래생태계 조성과 기술 활용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를 미래금융 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구호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래금융 산업의 흐름을 외면한 채 집안 단속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세계 가상화폐 거래 허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조건 규제하면 편하다. 허용했을 때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다만 정부당국은 이렇게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150여 년 전 우리역사를 반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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