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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엘리엇'…현대차 공격 막으려면 -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4-16 09:30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꼭 3년 만인 이번에는 현대차 그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과연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행동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직접 나서서 수익을 챙기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가 무엇인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 쉽을 결성한 뒤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해 왔다.


투자전략은 ‘수동적’ 자세가 일반적이었다. 수익을 내주는 주체는 투자대상이고,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을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국가채무상환 유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경우 그 비율이 100배에 달했다.

헤지펀드 투자전략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다. 1990년 이후 각종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국제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헤지펀드가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투자자로부터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을 당한다.

마진 콜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 현상으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헤지펀드들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마진 콜이 있을 경우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미친다.

헤지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먼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대상으로 택한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서는 외국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 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게 된다. 헤지펀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가도 신흥시장에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나비 효과`가 발생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이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국 단일금융법의 핵심이 된 ‘볼커 룰’에서는 헤지펀드의 상징인 레버리지 비율을 5배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격인 조지 소로스가 자신이 운용하던 타이거 펀드 등의 자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면서 헤지펀드 활동이 위축국면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엘리엇 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규제환경에 적극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대상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뀐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금융위기 이후 수익률에 목말라 하는 투자자도 자금을 몰아주었다.

최근 들어서는 ‘공유 경제’로 상징되는 대중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 공격에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 현대차 등 한국의 대기업을 상대로 자주 공격에 나서는 것도 의외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 그룹은 삼성과 달리 노조와 소액주주의 입지가 높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벌처펀드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검은 독수리에 비유되는 벌처펀드는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세컨더리 인수합병(M&A) 시장에 출회되는 매물을 투자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삼성과 현대차 그룹 뿐만 아니라 애플, 듀폰 등 세계적인 기업도 겨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그런 요구가 주가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빌 애크먼의 밸리언트와 엘러건 간 적대적 인수합병(M&A), 넬슨 팰츠의 펩시 이사회와 듀톤 간 분리 요구 사례에서 보듯이 돈이 되면 뭐든지 다하는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특히 ‘갤럭시’와 ‘아이폰’ 시리즈로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애플도 4년 전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상징격인 칼 아이칸으로부터 자사주 매입 요구에 시달려 결국은 항복했다. 애플 입장에서 주가 관리가 매우 중요했던 2016년 5월에는 칼 아이칸이 보유한 주식을 전량 처분해 또 한차례 곤혹을 치렀다.

폴 싱어와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영자의 게임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비교된다. 공통점은 참가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차이점은 협상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Deal)’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초기에 최대 압력을 가한 후 타협에 이른다. 폴 싱어는 초기에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지배구조 개선요구로 시작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현대차 그룹 공격이 벌써부터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애국(혹은 주인)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은 ‘윔블던 현상’이 가장 심한 국가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인인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한국처럼 윔블던 현상이 심한 국가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취약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와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유출과 직결되는 점이다. 벌써부터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현대차 그룹의 공격이 ‘삼성그룹의 많은 변화를 초래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반대 사례가 되지 않을까’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적대적 M&A 등을 통해 수익을 능동적으로 창출해 가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정도는 더 심하다. 이밖에 경제정책이 무력화한다든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화보유액과 경상수지흑자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외자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과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증적인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조성하기보다 외환위기 이후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자본과 국내자본 간 역차별 요소를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황금주<용어해설 참조> 도입도 검토해 봐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 이런 자세만 있다면 앞으로 더 심해질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부와 기업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

※ 용어해설
· 포이즌 필 :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 차등의결권 :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
· 황금주 :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주식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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