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인상을 앞두고 신흥국에서는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TT), 즉 긴축 발작이 재현되고 있다. 테이퍼 텐트럼(TT)은 의학용어로 큰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쉬는 운동선수가 심리적인 불안감에 휩싸이는 현상을 말한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브라질 헤알화, 터키 리라화, 러시아 루블화 등 신흥국 통화 가치는 올 들어 미국 달러 대비 10% 이상 급락하는 등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미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공개했다.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긴축 발작을 겪은 데 이어 이번에 자금이탈과 금융시장 불안에 노출된 국가는 자본거래에 있어서 달러 비중이 높고 달러 부채가 많은 특징을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Fed가 선도적으로 추진했던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공급된 풍부한 달러 유동성을 활용하고 국제금융시장 접근성 등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 자금에 의해 주도돼 왔다. 통화 가치를 감안한 ‘자금이동이론(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 변동분)’에 따르면 투자대상국의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으면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캐리 트레이드는 반드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 비율) 투자와 결부된다는 점이다. 어떤 국가에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때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금이 증폭돼 주식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시장에 거품이 쉽게 발생하고 투자대상국의 경제를 어렵게 한다.
반대로 TT가 발생하고 최악의 경우 ‘마진 콜(증거금 부족)’과 ‘디레버리지(투자원금 회수)`까지 겹치면 금융위기로 진전된다. 지난 10년 간 달러 부채의 향연에 취했던 신흥국이 Fed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로 달러 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자산매각으로 달러 유동성마저 줄어들자 아르헨티아처럼 IMF에 곧바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TT의 대응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전적 방안으로 토빈세 등과 같은 해외자본 유출입 규제다. 또 다른 하나는 내부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외화보유 확충과 외화건전성 규제 등이 있다. 각각의 방안에 대해 실효성을 검토한 연구를 종합해 보면 사전적 방안은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는 해외 자본 유출입 규제보다 앞서가는 복잡한 고도의 파생금융기법이 빠르게 발달되는 데다 국제간 자금흐름이 각종 캐리자금이 주도되면서 직간접 규제 이후에도 약간의 수익률 차이가 나면 종전보다 자금유출입이 심해지는데 기인한다. 특히 간접규제의 경우 적절한 보완책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효과가 더 제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화보유 확충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이 외부요인에 의한 각종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안전장치(self-insurance)로 중시할 만큼 효과가 컸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외화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서 신흥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 포인트)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 TT 당시 JP 모건이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 브라질을 ‘구취약 5개국(Fragile 5·구F5)으로, 2차 TT 당시 골드만삭스가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 멕시코, 콜롬비아를 ’신취약 5개국(신F5)로 분류할 때 외화평가지표(보유외화÷(경상수지적자+단기외채+외자회수))를 사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적정외화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접근법’, 외화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화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가지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화보유 동기에 따라 △‘IMF 방식 △그린스펀·기도티 방식 △캡티윤 방식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적정외화보유액이 크게 차이가 남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신흥국에서 논란이 끝이지 않고 있다.
각종 외화보유관련 평기지표로 볼 때 앞으로 Fed가 금리를 올려나갈 경우 TT가 발생할 상시적인 위험국은 베네수엘라.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다. 주변국 위기 전염 여부에 따라 TT가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국은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인도다. 어떤 경우든 중국은 TT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게 나온다.
우리 외화보유액은 ‘1선(직접 보유)’과 ‘2선(통화스와프 등 간접 보유)’ 자금을 합하면 5천억 달러가 넘는다. 가장 넓은 의미의 갭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외화보유액은 3천700억 달러 내외다. Fed가 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일부 신흥국이 3차 TT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로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6월 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 데믹’이다.
※편집자주: 인포데믹(Info-demic:Information과 Epidemic의 합성어. 잘못된 정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