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과 탱크주의로 요약되는 우리 경제의 1세대 경제인 가운데 1명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대우그룹과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회고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별세 소식에 안타까움을 보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했던 `세계로 나가자`는 김 전 회장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동구권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이를 기회로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수많은 `전설`도 만들어졌다.
단군이래 최대의 부도로 불리던 대우그룹 해체의 공과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확실히 한 세대를 풍미했던 `모험가`였다.
지금도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대우`의 흔적처럼 `소규모 개방국가`가 살아남는 방법은 여전히 바다 건너에 있음을 우리 대다수가 인지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김 전 회장이 세상을 등졌던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도 또 한 명의 거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냈던 폴 볼커.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중단선언과 오일쇼크로 미국의 물가가 폭등하자 볼커는 거침없는 금리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 그의 별명이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물가는 잡았지만 높아진 금리에 부담을 느꼈던 레이건 대통령은 그의 연임을 재가하지 않았고, 의장직 수행은 4년에 그쳤다.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는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월가에서 볼커의 영향력은 21세기에도 이어질 정도로 미국 금융권의 대부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미국 은행권의 공격적인 트레이딩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볼커룰`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2014년 한국경제TV가 주최한 세계경제금융포럼(GFC)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던 볼커 전 의장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보면서 의욕이 너무 앞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현실은 엄청난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상호의존성이 심화된 세계에서 국제자본의 이동과 변동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외부 요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서 중심국이 아닌 주변국 한국이 외부변화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조언하기도 했다.
이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로 갈등하는 우리의 현실을 두 거인이라면 과연 어떻게 해쳐나갔을까 떠올려본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발상을 전환하는 유연함과 어떤 상황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지키는 용기는 우리 앞에 높인 난제들을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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