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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4.0’ 시대에 세계와 단절되는 한국 경제…코로나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려면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6-29 09:04  

‘경제학 4.0’ 시대에 세계와 단절되는 한국 경제…코로나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려면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는 ‘뉴 애브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종전의 규범과 이론,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래 예측까지 어려워졌다.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케인스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경제학 4.0 시대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악화되는 추세다. 국제규범 이행력과 구속력도 2차 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역 블록은 붕괴 일보 직전이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가운데 코로나19 피해가 큰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제2, 제3의 브렉시트까지 우려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는 한 차원 낮은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CMA)으로 재탄생됐다. 다른 지역 블록은 존재감조차 없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쌍무 협력도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우려될 정도로 복잡해 교역 증진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란 삶은 국수를 그릇에 넣을 때 서로 얽히고설키는 현상을 말한다. A국이 B국, C국과 맺은 원산지 규정이 서로 달라 협정 체결국별로 달리 준비해야 할 수출업체에게는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 간에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생산 카르텔과 같은 시장담합기구도 무너지고 있다. 작년 초 창설 멤버였던 카타르가 탈퇴한 것을 계기로 1961년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파장과 변화를 몰고 왔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다.
국제통화질서에서는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주목된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 즉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보유 부담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국제금융기구의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판 IMF인 긴급외환보유기금(CRA)이 조성됐고, 유럽판 IMF인 유럽통화기금(EMF) 창설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세계은행(World Bank)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신개발은행(NDF)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이 설립됐다.

세계경제와 국제통화질서의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포퓰리스트가 판친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 4.0(globalization 4.0)’과 같은 의미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 ‘외부성(externality)’이 급증한다. 외부성이란 ‘사적비용(PC·private cost)’과 ‘사회적 비용(SC·social cost) 간 괴리가 나타나는 현상, 외부성은 PC보다 SC가 적은 경우 ‘외부 경제(external economy)’, 반대의 경우 ‘외부 불경제(external diseconomy)’로 나뉜다.
외부성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면 ‘가치(value)’가 ‘가격(price)’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현실진단 자료로 경제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즉 경제주체와 시장 반응까지 감안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계열 자료를 토대로 한 각종 모델에 의한 전망치도 예측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두분 전망기관이 예측 주기를 ‘분기’로 단축시켜 대응한지 오래됐다. IMF의 기업취약지수(CVI), 일본은행(BOJ)의 대차대조법(BS) 방식, 미국 경기싸이클예측연구소(ERCI) 방식 등 새로운 예측기법도 제시되고 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학 4.0 시대에 있어서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대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2018년 10월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발언한 정도로 경제학 4.0 시대에 나타나는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사례는 의외로 많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을 지향하고 있으나 한국은 슈퍼 예산이 상징하듯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선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오링’ 대비 ‘오프쇼오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 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명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부 정책결정과 집행권자의 의식과 가치가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특정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지 못하면 최소한 세계 흐름에는 동참해야 한다. 대내외 여건이 급변했던 1990년대 후반에도 나라 밖에서는 위기가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 경제 각료는 ‘펀더멘털이 괜찮다’는 동떨어진 진단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이 악화되는 점이다. 국가신용등급이 정체된 지 벌써 4년째다.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는 선진국 예비명단에서 탈락한지 5년이 넘었지만 재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과 자금도 들어오지 않거나 빠져 나간다. 주한 외국기업 단체는 각종 규제강화 등으로 경영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연일 비판하는 가운데 실제로 철수하는 외국 기업과 금융사가 늘고 있다. 우리 기업과 돈 그리고 사람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이른바 ‘3대 공동화 현상’이다.
특정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과 돈, 그리고 기업이 몰려들어야 한다. 던킨 도넛처럼 핵심 중심부가 비워있으면 대내외 변수에 취약하고 경기가 쉽게 불안해지는 ‘천수답 경제’가 된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함께 세계 양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국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결정과 집행자일수록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하고 훈련된 글로벌 인재가 배제돼 있을 때다. 국정운영 우선 순위도 ‘대외’보다 ‘대내’, 경제 각료가 ‘유연한 사고’보다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을 때도 나타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이념이나 주장의 틀 속에 갇혀있는 경우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세계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시간만 지나면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룸(boiled frog syndrome)’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베네수엘라 전철을 밟게 된다.
분야별로 △경제 활력 과제로는 심리 안정, 시장과 현장 중시, 친기업, 규제 완화, 감세 추진 △잠재 성장 과제로 구조개혁, 제조업 리쇼오링과 4차 산업 육성 △민생 경제 과제로 국민 생활경제 현안 우선 해결 △대외 정책 과제로 대중국 쏠림 완화와 상시 국가IR 활동 전개 △남북 협력 과제는 다른 국정과제(특히 경기) 간 균형 속 추진 △정책 운영 과제로 소득주도 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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