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꺾은 넷플릭스…"메기냐? 황소개구리냐?"

이지효 기자

입력 2020-08-04 16:20   수정 2020-08-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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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 손든 KT…`올레TV`서 서비스

LG유플러스에 이어 국내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KT가 결국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KT는 지난 3일부터 자사 IPTV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넷플릭스 이용 고객이라면 올레TV에서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로그인이 가능하다. 별도 신용카드를 등록하지 않아도 KT 통신료에 넷플릭스 구독료가 함께 청구된다.

올레TV 이용자는 월 9,500원, 1만 2,000원, 1만 4,500원 등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하면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이 가격은 단품으로 이용하는 넷플릭스 요금제와 동일한 만큼 특별히 가격 혜택은 없다. 다만 KT는 9월 30일까지 올레TV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넷플릭스 프리미엄 이용권 3개월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온라인에서는 "모바일이 아닌 대화면으로 크게 볼 수 있어서 좋다" "LG유플러스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냥 KT 써야겠다" 등 긍정적인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KT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실제로 그간 SK텔레콤과 KT는 넷플릭스와의 제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망 사용료를 둘러싼 `망 중립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관련 소송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5월 8일 한국경제TV 보도

● "크게 돈 안된다`던 넷플릭스와의 제휴

실제로 지난 5월 한국경제TV가 `KT가 넷플릭스와의 제휴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KT, 결국 `넷플릭스` 품으로?>)`는 보도를 한 이후에도 KT는 "망 사용료 문제 등으로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며 "크게 돈이 되지도 않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제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KT는 자체 OTT인 `시즌(SEEZN)`도 있다.

KT는 왜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택했을까. `콘텐츠`가 유료방송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로 떠오른 가운데, 콘텐츠에 연간 22조원을 투자하는 넷플릭스는 놓칠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2018년 넷플릭스와 단독으로 파트너십을 체결한 LG유플러스의 가입자는 그해 하반기 387만명에서 지난해 하반기 436만명으로 늘었다. 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유료방송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된 것도 원인이다. KT는 현재 국내 유료방송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각각 CJ헬로와 티브로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시장점유율 격차를 6~7% 내외로 좁히면서 빠르게 뒤쫓고 있다. 경쟁사와 콘텐츠 경쟁에서 밀리면 유료방송 1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아래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 "접근성은 높아졌는데…좋은 게 뭐야?"

`킹덤` `인간수업` 등과 같은 한국 콘텐츠는 물론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등` 전 세계의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올레TV`에서 광고없이 시청할 수 있다. 소비자 접근성은 크게 높아졌지만 그게 전부다. 올레TV의 넷플릭스 제휴 가격은 단품으로 이용하는 넷플릭스 요금제와 똑같다. KT가 진행하는 프로모션도 1만 6,500원 상당의 올레TV 에센스 이상 요금제와 기가인터넷 최대 500M 이상, 기가지니2를 모두 가입해야 한다. 3년 약정 결합 기준이다.

KT가 보유한 자체 OTT인 `시즌(SEEZN)`도 계륵이 됐다. 시즌은 200여 개의 실시간 채널과 5만 편의 VOD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더 많은 채널과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월 5,500원부터 1만 1,000원까지 4단계 요금제를 추가로 선택하면 된다. KT 고객이 IPTV와 넷플릭스, 시즌을 함께 보더라도 비용적인 면에서는 혜택이 없다. KT는 넷플릭스와 제휴하면서 시즌과의 협력 방안을 아직까지는 내놓지 않았다.

KT가 자사 IPTV 가입자를 묶어두는 것은 가능해졌다. 다만 "넷플릭스에 종속될 수 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휴에 대해 송재호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은 "이번 제휴를 통해 넷플릭스 가입 및 결제부터 해지, 서비스 품질까지 올레TV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편익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태희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 `한국판 넷플릭스` 비웃는 넷플릭스

정부가 국내 OTT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KT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면서 정부의 기조를 역행하는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지난 6월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통해 2022년까지 `한국판 넷플릭스` 5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플랫폼 사업자의 인수합병(M&A)을 간소화하고, 1등 사업자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규제를 없앴다. 국내 OTT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던 가운데 KT가 넷플릭스에 플랫폼을 내어준 것이다.

넷플릭스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와이즈 앱에 따르면 2018년 말 90만명이던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는 지난해 10월 200만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언택트 문화의 확산으로 지난 4월에는 유료 가입자가 270만명을 돌파했다. 월 이용자도 국내 OTT를 훨씬 넘어섰다. 닐슨코리아클릭의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는 지난 5월 현재 736만명이다. 국내 OTT 1~2위인 웨이브(394만명), 티빙(395만명)을 합친 규모다.

KT까지 초고속 유통망을 열어주면서 넷플릭스는 날개를 달았다. 이전까지는 LG유플러스 IPTV에서만 가능했는데 1위 사업자인 KT의 플랫폼까지 흡수하면서 전체 유료방송 시청자의 34.95%가 IPTV에서 넷플릭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KT가 자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느라 국내 OTT 생태계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열악한 국내 OTT…"생존까지 고민"

이제 통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은 SK텔레콤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관련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어 제휴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넷플릭스 시대가 열렸다"며 "국내 미디어 산업의 생존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넷플릭스에 밀려 토종 미디어들이 줄줄이 사업을 접고 있는 아시아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올해만 160억 달러, 우리돈 약 20조원을 자체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국내 OTT의 상황은 어떨까. SK텔레콤이 지상파 3사와 함께 만든 `웨이브`는 2023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KT `시즌`과 SK브로드밴드의 `오션`은 기자 간담회에서 자체 콘텐츠 제작비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궁여지책으로 국내 OTT들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와 애플 TV 등 공룡 OTT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것도 위기로 꼽힌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적과의 동침`을 불사하고 `웨이브`와 CJ ENM과 JTBC가 합작한 `티빙`의 합병 제의를 하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는 최근 Btv 보유 콘텐츠를 무제한 시청할 수 있는 OTT 성격의 `오션` 요금제를 출시했다.



● `넷플릭스, 메기냐? 황소개구리냐?`

콘텐츠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넷플릭스의 자금력 덕분에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실제로 최근 일본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는 인기다. 넷플릭스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위상도 높아졌다.

반면 미디어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OTT와 유료방송이 중장기적으로 생존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넷플릭스의 집중 공략이 이어지자 지난 4월 동남아시아 대표 OTT인 `훅`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말레이시아 1위 OTT인 `아이플릭스`도 빚을 줄이기 위해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앞서 2018년 10월엔 워너가 인수했던 한류 드라마 전문 OTT인 `드라마피버`가 문을 닫았다.

넷플릭스는 `메기`일까, `황소개구리`일까.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책간담회에서 "국내 OTT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정부가 OTT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 역시 "유럽연합에는 자국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30% 비율 이상 확보하도록 하는 자국콘텐츠 쿼터제가 있다"며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글로벌 사업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동장치를 마련해야 상생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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