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닥터 둠`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분류된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 커다란 획을 긋는 중요한 예측에는 어김없이 비관론, 그것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극단적인 비관론을 펼쳤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발생할 당시 미국 경제는 10년 동안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장기 불황론`을 주장했다. 2011년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진 직후 미국 경기가 다시 둔화 조짐을 보이자 `더블 딥(이중 침체)`보다 더 어려운 `트리플 딥(삼중 침체)`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어둡게 봤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재정위기에 시달렸던 유럽과 관련된 비관론을 많이 내놓았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그렉시트, 유로화 가치가 등가 수준(1유로=1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표적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유럽 경제와 관련한 이런 비관론은 들어맞지 않았다.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은 계속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했던 2013년에 가장 관심을 끌었던 중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총체적 난국)`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했었다. 같은 시점에 또 다른 관심사였던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하는 아베노믹스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극히 비관적으로 봤다.
전후 최장의 경기 호황과 증시 강세장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이 또 도졌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미국 경제가 ‘I(수직 절병)’자형으로 추락하고 지난 1월 15일에는 비트코인이 대폭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들어맞지 않아 월가에서는 이솝 우화의 `늑대와 양치기 소년`으로 비유되기 시작했다.
비관론 일색이었던 루비니 교수가 전 세계 투자자들의 귀를 의심케 했던 낙관론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최근처럼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테이퍼링 논쟁이 고개를 들었던 2013년 1월 초에 루비니 교수는 오히려 “앞으로 2년 동안 주식이 유망하다”며 “가능한 주식을 많이 사둘 것”을 권했다.
‘루비니 패러독스’라 불리울 만큼 뜻밖의 낙관론이라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비니 교수가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데에는 `경제 정상화 역설`을 들었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임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년 과장이 더 좋다는 것에 비유되는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1979년 2차 오일 쇼크 직후 미국 경제는 실물경기가 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침체된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양책을 쓰면 물가가 더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면 실물경기는 더 침체되기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에서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이론이 `공급중시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다. 그 이전까지 총수요 조절을 통해 경기문제를 해결하는 케인즈 처방에서 벗어나 세금감면, 규제완화 등을 통해 총공급 능력을 늘려 침체된 경기도 살리고 물가도 안정시켰다.
`경제 정상화 역설`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위기 발생 4년째를 맞아 미국 경기는 기대만큼 빠르게 회복되고 못하고 있었지만 금융완화 후유증으로 주가와 물가, 국채금리가 오르고 새로운 형태의 스테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즉, 후유증을 잡기 위해 테이퍼링을 단행하면 경기가 침체되는 ‘에클스 실수’, 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양하면 ‘그린스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루비니 교수는 Fed가 두 가지 실수를 동시에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딜레마 여건에서는 금융완화 정책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통화정책의 불가역성’을 들어 증시 낙관론을 펼쳤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여건에서 경제가 정상화되면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경기가 ‘더블 딥’ 혹은 ‘트리플 딥’으로 재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가 정상화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루비니 교수의 비슷한 시각에서 워런 버핏도 증시 낙관론을 펼쳤다. 테이퍼링 논쟁이 고개를 들 무렵 ‘소프트 패치(soft patch·회복기에 경기가 일시적으로 어려워지는 현상)’ 논쟁이 일어났던 미국 경기에 대해 회복세는 지속되지만 고용문제 해결은 미흡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 마디로 ‘U자형’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버핏의 시각이었다.
‘U’자형 경기회복은 주가 흐름에는 가장 이상적이다. 당시 월가에서는 주가 수준에 대해 ‘비이성적 논쟁’이 일어났지만 버핏은 그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비이성적 과열’이란 1996년 들어 주가가 거침없이 오를 때 당시 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처음 사용했던 용어다. 이 발언 직후 미국 주가는 20% 폭락했다.
버핏의 이런 시각은 미국 증시 앞날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종전에는 거품이 발생하면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테이퍼링을 단행했다. 하지만 주가가 높되 비이성적 과열이 아니라면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경기가 시차를 갖고 뒤따라올 것이라는 의미다. 버냉키 전 의장도 같은 입장이었다.
결국 2013년 당시 루비니 교수가 주장했던 증시 낙관론은 미국 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추가 부양책과 출구전략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령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더 악화돼 지속 성장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낙관론으로 급선회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비관론인 셈이다.
주가는 항상 오를 수 만은 없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금융위기 때보다 더 강한 금융완화와 증시 낙관론으로 크게 줄어든 부채의 숙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하이먼-민스키 모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할 수 있는 것이 주식의 태생적 본질이다. 최근처럼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고 테이퍼링 논쟁이 고개를 들 때 동학개미들이 곱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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