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파격 기부 이유가 ESG?…잘 되는 테크기업의 조건 [한입경제]

김종학 기자

입력 2021-02-19 17:50   수정 2021-02-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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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기업 아닌 '강한기업'의 조건
    갑질·차별 막고, 환경개선에 동참
    글로벌 공급망 재편한 ESG


    보유 자산만 10조에 달하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 5조 원에 배달의 민족을 매각한 김봉진 대표. 한국 신흥 테크 기업의 최고 경영자인 두 사람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파격적인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신흥 IT 기업 창업자들의 기부가 대기업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와 승계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건 물론입니다.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건 김 의장이 기부 배경으로 밝힌 ESG입니다. 바로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al-Social-Governance)의 약자인 ESG. 지난해부터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부쩍 자주 언급하는 이 단어. 대체 어떤 말이기에 회사 경영과 관계 없어보이는 기부도 가능하게 하는 걸까요?

    ● 착한기업 선언? 아닙니다…강한기업 가려낼 기준

    작년말부터 한국에 불어닥친 ESG는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2004년 전세계 금융회사 CEO에 처음 제안해 알려진 말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차별과 갑질을 없애고, 투명한 경영 환경을 갖춘 회사를 선별하는 기준들을 담은 지표입니다. 초기에는 `착한 기업`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 지표가 정말 중요해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보통 기업의 성과는 매출, 영업이익, 현금흐름 등 재무적인 지표로 평가하죠. 하지만 재무제표만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을 다 살필 수는 없습니다. 가령 지난해 실사판 `뮬란`을 개봉한 디즈니는 영화 말미에 신장 위구르 촬영에 도움을 준 중국 공안에 감사한다는 문구를 넣어 큰 비판을 받았고, 영화 매출에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 애플 팀쿡 CEO는 지난 달 중대 발표라며 미국 CBS를 통해 인종차별 해소를 위해 1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전기차 개발 등 사업 계획이 아니라 저소득, 흑인 등 핵심 소비자들을 껴안는 조치를 꺼내놓은 겁니다. 소비자들의 기대 속에 이 계획을 발표한 뒤 주가는 주당 14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 갑질 하다가 망한다…기업 가치까지 뒤집은 ESG

    비재무적인 기업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ESG가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는 더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전통 석유기업 엑슨 모빌의 추락, 재생에너지 기업인 넥스테라 에너지, 오스테드의 약진입니다. 올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주가를 상당부분 회복했지만 엑슨모빌은 탄소배출 저감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주가가 급락해 92년 만에 다우존스 지수에서 퇴출당했습니다.

    반면 덴마트 국영기업 `동 에너지`는 풍력 발전에 일찍 투자를 시작하고, 2017년에 석유사업을 완전히 매각하고서 이름을 오스테드로 바꿔 풍력 발전 시장 1위, 미국 넥스테라 에너지는 친환경 인프라 대표기업으로 조명받으면서 주식시장에서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ESG의 `S(사회)` 즉 차별, 갑질로 국내에 익히 알려진 사례도 있습니다. 갑질 사건 후유증으로 `ㄴ`유업회사의 주가는 한때 100만원을 넘던 것이 반의 반토막, 여전히 과거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지켜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환경, 사회, 소비자를 겨냥한 ESG 도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기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포장한 투자 계획을, 미국 상장을 앞둔 쿠팡이 직원들과 오픈마켓 사업자 등 사회기여에 대한 항목을 세세히 밝힌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블랙록이 불붙인 ESG…바이든 취임으로 `활활`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전 세계 투자 자금 흐름도 달라졌습니다. 무려 7조 달러, 우리 돈으로 8천조 원 규모 자산을 움직이는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해 초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블랙록의 가장 중요한 투자 기준은 환경이 될 것"이라며 "대륙이 이동하는 정도의 거대한 자금 흐름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랙록의 주도 속에 ESG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자금은 작년 기준 8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94조 원을 넘겼습니다. 글로벌 ESG 펀드로 유입된 자금도 1년 만에 29% 폭발적으로 증가해 1조 7천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흐름에 불을 댕긴 건 새로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입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그의 말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해 탄소배출 저감, 환경 정책에 동참하지 않은 기업은 생존이 더욱 어려운 여건에 몰리고, 금융기업들은 투자 포트폴리오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 동참하지 않으면 도태…공급망 재편의 축 ESG

    기업들의 직접적인 변화를 부추기는 건 ESG를 따르지 않으면 빅테크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엔환경계획이 전 세계 이산화탄소를 앞으로 10년 안에 매년 7.6%씩 감축하지 않으면 생존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ESG의 E(환경)의 핵심 조건인, 신재생에너지 100% 도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애플은 이미 100% 재생에너지 사업장을 구축하고서 매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 환경에 대한 투자에 협력 기업들도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전기차, 배터리, 발전기술을 이끌고 협력해야 할 현대차와 SK 등 국내 대기업들도 줄줄이 ESG 경영 도입에 참여하는 형국입니다.

    전 세계 경영 환경이 바뀌면서 이를 측정할 지표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MSCI는 기업들의 환경 정책, 사내 문화, 회계 등을 모두 종합해 ESG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 중엔 네이버, 글로벌 기업 중엔 테슬라, 애플이 높은 등급을 받고 있습니다.

    ESG는 이제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가 더 경쟁력있는지, 위험요소가 없는 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변화에 동참한 한국 기업들 중에 강한 경쟁력을 인정받을 회사가 더 나올 수 있을까요? 그저 착한 기업 흉내가 아니라 투명한 경영, 갑질없는 회사,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에너지, 기술 기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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