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반바지 입은 사연은? [김선엽 기자의 뷰티 인사이드]

입력 2021-09-02 08:47   수정 2021-09-03 21:38




▶ 창립 이래 첫 `반바지 회의` 주재한 서경배 회장

지난 달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사옥 11층에 있는 임원진 회의실에 진풍경이 연출됐다.

평소 캐주얼 복장을 즐겨입는 서경배 회장이 이날 한 발 더 나아가 반바지를 입고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임원진들 역시 입사 이래 처음으로 반바지 차림으로 서 회장과 회의를 했다.

복장 규정이 자유로운 회사 내에서도 서 회장과 임원진들의 `반바지 회의`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은 3년 전부터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직원들이 최대한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독려해 오고 있다.

▶ 서경배 회장, 반바지에 `경영 메세지` 담다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회사 특성을 고려할 때, 복장제한을 두는 건 직원들이 미(美)적 감각을 키우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서 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사내 정책이다.

`멋:있게 입자(Dress with Mot)`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자율 복장 문화는 그 사이 사내에 확고하게 정착됐다.

반바지를 입거나 샌들을 신고 출근한 남성 직원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회사에 더 이상 없다.

서 회장도 평소 노타이는 물론 재킷과 면바지에 흰 운동화를 매칭한 편안한 복장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회장의 `유러피언 룩`은 패션에 민감한 직원들 사이에서도 늘 화제다.

한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반바지 패션은 이제 익숙한데, 회장님이 반바지를 직접 입으실 줄은 몰랐다"며 "직원들도 회사 일에 있어 더 과감해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中 사드·코로나 팬데믹` 정면 돌파 의지 담아

국내 화장품 업계 대부분 그렇듯,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사드 사태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마케팅 전략과 오프라인 매장과 면세점 중심 유통 구조는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확고한 신념과 취향에 기반한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가 화장품 시장의 새로운 `큰 손`으로 떠올랐다.

서 회장의 자율 복장 지침은 MZ세대의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해 시장을 선점하고자 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비전과 무관하지 않았다.

▶ MZ세대 공들이는 아모레퍼시픽

회사는 일찍이 지난 2017년 용산 신사옥 이전 이후부터 MZ세대를 겨냥한 `니치마켓(틈새시장)` 공략을 회사의 차세대 성장 전략으로 낙점하고,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린 스타트업`을 통해 다양한 니치 브랜드를 잇따라 런칭했다.

`그루밍족` 증가 추세를 발판 삼아 키운 남성 뷰티 브랜드 `브로앤팁스`, 남성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비레디`, 2030 비건족을 겨냥한 비건 브랜드 `이너프 프로젝트`, 이너 뷰티 브랜드 `큐브미`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의 니치 브랜드 육성 전략은 이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18년 출범한 큐브미는 1년 만에 각종 e커머스와 백화점, 드럭스토어 등 온·오프라인 700여개 매장으로 판매처를 확대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Z세대 남성을 겨냥해 2019년 9월 런칭한 비레디는 지난해 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79% 성장했고, 연간 매출 목표도 브랜드 출범 한 달 만에 달성했다.

올 들어 회사는 MZ 소비자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산업군을 넘나드는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이색 협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1월 아모레퍼시픽은 `MZ세대의 샤넬`로 통하는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와 협업해 제작한 한정판 제품 `프로텍션 박스`를 선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아이템(시트 마스크, 톤업 쿠션, 립밤)과 오프화이트의 패션 아이템(패션 마스크, 마스크 스트랩, 프로텍션 컨테이너)으로 구성된 제품으로 출신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오프화이트가 한국 기업과 진행하는 첫 번째 콜라보였기 때문이다.

또, 2월엔 `한율`이 모바일 농장 게임 `레알팜`과 콜라보 게임을 런칭하며 브랜드 인기제품인 달빛유자 라인의 스토리를 게임에 담아냈다.

회사는 이어 5월 삼성전자와 협업해 `갤럭시 버즈 프로 위드 라네즈 네오 쿠션 콜라보라해` 스페셜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오랜 인식이 변하고, 굳게 자리잡았던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까진 무수한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누군가가 용감한 `첫 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다.

한 회사 임원의 반바지 출근이 자연스러운 일로 인식될 때까지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서 2008년 아모레퍼시픽은 `쿠션`을 개발했다.

아모레표 쿠션은 국내를 넘어 전세계 뷰티 업계의 메이크업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했다.

통념을 깬 다양한 시도들을 감행하는 게 생존전략이 된 시대.

단순 임직원들의 복장 자율화를 격려하는 차원에서였다면, 서 회장이 반바지 회의를 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서 회장이 `이렇게까지` 한 건, 쿠션을 잇는 `강력한 한 방`을 기다리고 있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공산이 크다.

이제 직원들이 과감한 `첫 발`을 내딛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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