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4~5배, 한도는 반토막"...불안한 대출난민

최진욱 기자

입력 2021-10-0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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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새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0.4%포인트(p) 가까이 뛰고 전세자금대출과 잔금대출 한도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등 대출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은행이 대출금리의 기준으로 삼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같은 지표금리가 오른 영향도 있지만, 금리 인상과 대출 한도 축소의 상당 부분은 `대출을 줄이라`는 금융당국 압박의 결과다.
은행권은 정부가 조만간 대표적 실수요 대출인 전세자금대출의 보증 비율을 낮추는 등 추가 규제에 나설 경우 대출 시장이 더 얼어붙고 실수요자의 타격도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정부 `대출 축소` 압박에 은행 금리 상승 폭, 지표금리의 4∼5배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9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연 2.981∼4.53% 수준이다.
이는 한 달 전인 8월 말(2.62∼4.190%)과 비교해 하단과 상단이 각 0.361%포인트, 0.3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변동금리가 아닌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도 같은 기간 연 2.92∼4.42%에서 3.22∼4.72%로 상승했다. 최저, 최고금리가 모두 0.3%포인트씩 오른 셈이다.
신용대출의 경우 현재 3.13∼4.21% 금리(1등급·1년)가 적용된다. 8월 말(3.02∼4.17%)보다 하단이 0.11%포인트 뛰었다.
결과적으로 한 달 사이 주요 시중은행에서 2%대 대출금리가 거의 사라졌다.
이런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상 폭은 시장금리 등 조달비용을 반영한 지표금리 상승 폭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경우 지표금리로 주로 코픽스를 활용한다. 코픽스는 쉽게 말해 국내 8개 은행이 대출에 쓰일 자금을 조달하는데 얼마나 비용(금리)을 들였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의 금리 변동이 반영된다.
최근 한 달간 신규 코픽스는 0.95%에서 1.02%로 0.07%포인트 올랐다.
결국 0.3%포인트가 훌쩍 넘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오름폭은 지표금리(코픽스) 상승 폭(0.07%포인트)의 약 4∼5배에 이르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등을 우려하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조이라`고 강하게 압박하자, 은행들이 지표금리에 자체 판단으로 더하는 가산금리를 더 올리거나 거래실적 등을 반영해 깎아주는 우대금리를 줄였다는 얘기다.
대표적 사례로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달 3∼16일 불과 약 열흘 사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우대금리를 깎아 실제 적용 금리를 0.3%포인트나 올렸다.
◇ 전세대출 4억8천만→2억…신용대출 연봉 2배이상→연봉 이내
한 달 사이 은행권의 대출 한도도 크게 줄었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절반 이하로 깎이는 경우까지 속출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전세자금대출의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방식의 한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차보증금이 최초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오른 경우, 지금까지 기존 전세자금대출이 없는 세입자는 임차보증금(6억원)의 80%인 4억8천만원까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임차보증금 증액분인 2억원을 넘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대출 가능 금액이 절반 아래로 줄어든 셈이다.
같은 날부터 KB국민은행의 집단대출 중 입주 잔금대출의 담보 기준도 `KB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잔금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대부분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이 적용됐기 때문에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여유 있게 잔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 종류 가격 가운데 최저 가격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대부분 분양가격을 기준으로 잔금대출 한도가 상당 폭 줄어든다.
쉽게 말해 분양가가 5억원인 아파트의 현 시세가 10억원으로 뛴 경우 이제 10억원이 아닌 기존 분양가 5억원을 기준으로 잔금 대출의 한도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분양가와 현 시세의 차이에 따라서는 잔금 대출 한도 역시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
지난달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도 `연봉 이내`로 제한했다.
이전까지 일부 대기업 직장인, 전문직 등 고신용·소득자의 경우 많게는 자기 연봉의 2∼3배의 신용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대출 한도가 수억 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 대출 한파 내년까지…금융권 "정부, 전세대출도 추가 규제할 듯"
대출 수요자 입장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부와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 노력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등은 지난달 30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올해 6%대로 유지하고 내년에는 4%까지 낮추는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당장 이달 초중순 발표 예정인 금융위원회의 가계부채 대책에 전세자금대출·집단대출 등 대표적 실수요 대출까지 더 조이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전세대출은 실수요자 대출이기에 세밀하게 봐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금리라든지 조건 측면에서 (다른 대출에 비해)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 등으로 미뤄 금융권은 당국이 보증률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전세자금대출 억제에 나설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4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변동금리는 2.681∼4.30% 수준인데 이는 전체 주택담보대출 금리(2.981∼4.53%)보다 약 0.2∼0.3%포인트 낮다.
시중은행들은 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의 보증(보증률 80∼100%)을 바탕으로 전세자금을 빌려준다. 은행 입장에서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보증 덕에 거의 떼일 염려가 없다는 뜻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이 가능한 이유다.
만약 정부가 이 보증률을 낮출 경우, 전세자금대출의 부실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은행은 대출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NH농협까지 포함한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만 올해 들어 15.41%(105조2천127억→121조4천308억원)나 불었는데 금리가 뚜렷하게 높아지면 급증세가 다소 꺾일 가능성도 있다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당국 관계자들의 발언으로 미뤄,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 성격의 대출도 최대한 억제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 같다"며 "정부의 공식 추가 규제를 실행하고 불필요한 과잉 대출도 KB국민은행처럼 알아서 적극적으로 막으라는 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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