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투자자 울렸던 태림페이퍼…또 상장 한다고? [쓰리고]

고영욱 기자

입력 2022-03-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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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시장’ 들락날락...태림페이퍼에 무슨 일이
태림페이퍼 자진상폐 사건의 재구성
헐값에 주식매도청구...사모펀드는 수천억 차익
태림페이퍼 “주주친화 정책 실천할 것”


● ‘꿈의 시장’ 들락날락...태림페이퍼 무슨 일?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꿈꾸는 코스피 시장 입성. 그 시장에서 제 발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는 기업이 있다. 태림페이퍼다. 기업 간 거래(B2B)가 주축인 만큼 일반 소비자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다. 태림페이퍼는 50년 업력의 골판지 박스제조 업체로 동종 업계 1위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만 4천억 원 대, 마켓컬리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최근 택배 수요가 늘면서 기업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경제TV 특별취재팀이 만난 김성형(가명)씨는 오래 전부터 태림페이퍼의 가치에 주목해온 투자자 중 한사람이다. 기업 재무 계통에서 일해 재무정보에도 빠삭했다. 나름의 분석과 전략을 통해 수 천만 원을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태림페이퍼 주식을 강제로 뺏겼다고 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태림페이퍼 자진상폐 사건의 재구성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림페이퍼 창업주인 정동섭 회장은 경영권을 가족에게 승계하는 대신 사모펀드 운용사 IMM PE에 팔기로 했다. 본인 유고시 경영권 분쟁 등의 가능성을 우려해 가족들 간 논의한 결과다. 사모펀드는 태림페이퍼(당시 동일제지)와 태림포장 등 4개 계열사를 약 4천억 원, 주당 5천 원 대에 인수했다. 그 뒤 곧바로 자진상장폐지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자진상폐를 위해서는 지분 95% 확보가 필요하다. 태림페이퍼는 주식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제시한 매입가는 주당 3,600원. 주주들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성형 씨는 “그 당시에 주가가 역사적으로 가장 저가로 형성됐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액 주주들은 3,600원이 이익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95% 공개 매수에 실패를 했다”고 했다. 다음 과정은 그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김 씨는 “1차 공개매수에 실패하면 보통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그 가격에 하거나 아니면 공개매수 가격을 더 높인 다음에 실시한다. 그래야지 성공하니까. 왜냐하면 3,600원에 95% 못 모인다는 게 증명이 된 것”이라면서 “그런데 태림페이퍼는 신탁계정을 통해 회삿돈으로 주식시장에서 자기 주식을 매집했다”고 했다. 참고로 이 사건 이후 금융당국은 자기주식 매입을 통한 자진상폐를 막았다.



● 헐값에 주식매도청구...사모펀드는 수천억 차익

그렇게 지분 95%를 채운 뒤 지배주주의 주식매도청구권을 활용해 지분 100% 확보에 이른 태림페이퍼. 문제는 3,600원이라는 주식 가격이었다.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주주들은 법원의 판단을 구해보기로 했다. 법정 다툼 중에 회사 측은 한 대형 회계법인에 의뢰해 만든 주식가치평가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우리는 당시 문건을 입수해 회계전문가와 다시 검토해봤다.

김경률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는 해당 보고서에서 크게 몇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자본적지출(CAPEX)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본적지출을 (추정할 땐) 과거의 수치를 반영해서 넣어야 되는데 그동안 20, 30억 원대였는데, 뜬금없이 130억 원으로 넣어 6배가 늘어나버리니까 곧바로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보다 기업가치가 낮기까지 한 이례적인 숫자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1심은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당 가격을 1만3,200원 가량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2심에선 7,600원으로 결정, 지난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으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4년간 송사로 몸과 마음이 지친 투자자들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김 회계사는 이를 두고 “굴지의 회계법인이 만든 주식평가보고서 결과가 재판 결과와 두 배 넘는 차이를 보이며 배척당한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저급한 맞춤형 보고서였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 소송을 담당했던 김광중 변호사는 이 사건이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점을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2심에서) 주식가격을 산정하는데 별도의 고유 취지가 있는 상속세와 증여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회사 대주주가 예를 들어 내년에 소액주주 주식을 매수하겠다하면, 충당금 등을 쌓아 손실을 크게 인식하는 식으로 짜 맞출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태림페이퍼 사업구조조정과 지분정리를 하면서 발생한 계열사(태림포장)와의 수상한 거래방식을 두고 또 다른 소송도 진행하고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회사지분 100% 갖고 있는 사모펀드는 수익 챙기기에 바빴다. 주당 4,300원을 배당받은 뒤 중견그룹 글로벌세아에 태림페이퍼를 팔았다. 가격은 7,300억 원, 총 인수금액 대비 약 2배로 주당 가치로 보면 8배에 달하는 차익을 남긴 셈이다.



● 태림페이퍼 “주주친화 정책 실천할 것”

그렇다면 이런 회사를 재상장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김 회계사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내팽개쳐버리고 대주주의 일방적인 이익이 관철된 형태로 상장폐지한 뒤 재상장한 사례는 본적 없다"면서 "재상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부정적"이라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주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삼성전자에 물어야할 책임을 다른 데 회피할 수는 없지 않냐"고 꼬집었다.

새 주인인 글로벌세아도 태림페이퍼에 얽힌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최근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는데 통상적인 기간보다 오래 걸린 이유도 이런 전력 때문이라고 했다. 글로벌세아 측은 서면을 통해 과거 사모펀드와 개인주주들과의 소송건은 대법원 판결 뒤 법원 공탁금 추가불입까지 모두 끝났다고 밝혀왔다. 특히 태림페이퍼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뒤 주주 친화적 IR정책을 실천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최대주주 의무보유 확약기간 연장, 일정기간 동안 배당성향 확약과 최대주주 배당 포기 등의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구주매출 비중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한편, 글로벌세아그룹 회장과 태림페이퍼 창업주는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했다. 앞서 김성형씨를 비롯한 태림페이퍼 투자자들은 글로벌세아가 해당 사모펀드에 돈을 투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처음부터 인수판을 짯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회계사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런 일만 해줄 수 있는 곳에 맡겼을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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