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계획대로 수도 키이우를 단기일에 점령하지 못하자 다른 주요 도시를 장악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군이 키이우 공략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지만 남부지역을 집중 공격해 해안도시 마리우폴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동향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 변화, 즉 `플랜B`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당초 목표는 수도 키이우에 바로 진격해 속전속결로 함락시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이었던 걸로 미국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완강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키이우 공략이 진전을 보지 못하자 다른 주요 도시를 포위 공격해 점령하고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전술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같은 압박 전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가져가려 하는 것으로 미 바이든 행정부는 보고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이후 크림반도와 러시아 서부를 잇는 땅을 확보하고 분쟁지역인 돈바스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려 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주요 도시에 대한 포위 공격을 이어가는 등 공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영토와 중립국화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 확보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계속 점령하면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는 확실히 `포위 전술`(siege tactics)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 입장에선 수주나 길게는 수개월간 러시아군의 원거리 포격이나 폭격에 시달려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마리우폴과 같은 도시에 대한 공략에서 이같은 포위 전술로 전환했는데, 이는 2차 체첸전쟁 때인 1999~2000년 그로즈니를 공격할 때 쓴 전술이기도 하다. 이 전쟁으로 푸틴은 총리로 올랐고 대통령까지 됐다.
푸틴 대통령은 공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게 되면 전쟁 목표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고서 결국 점령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푸틴 대통령의 플랜B 분석은 공식적인 정보 평가 결과는 아니고 일부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시각이라고 NYT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전술은 변했을지 모르되, 그의 목표는 변함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폴란드 대사를 지낸 바 있는 다니엘 프리드는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라며 "단지 그의 전술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는 "푸틴 대통령이 지금 공격을 퍼붓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저항하기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국 제거돼야 한다. 이게 스탈린식 숙청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은 밝지 못하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전장에서 전술을 바꿨다는 분석에 동의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의 요구사항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푸틴이 협상에 응한 것은 러시아 국민에게 자신이 외교에 열려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서방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허브스트는 분석했다. 그는 현재 협상에 러시아 측에선 고위급이 관여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브스트는 "푸틴이 실무자급 대화에 나선 것은 전장에서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는 여전히 전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며 자신의 과격주의적인 요구사항을 고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CNN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들을 인용해 협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그의 초기 요구사항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어 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CNN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공화국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밝힌 터키 대통령실 관계자의 현지 언론 인터뷰를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ddehg@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