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 상황이 악화하는 미국에서 경기침체는 물론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 속 물가상승) 발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6% 뛰어 1981년 12월 이후 40여년 만의 최대폭 상승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 시장 전반에 이런 심리를 확산했다.
지난 4월 8.3%로 진정 기미를 보였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오히려 더 커진 것은 물론 시장 전망치(8.3%)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억제를 위한 중국의 고강도 방역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물가 지표는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시간대가 이날 공개한 6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 예비치는 50.2로 1978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저치를 찍으면서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상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소비 심리는 이미 역대 최악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는 결과여서 그동안 소수에 그쳤던 경기침체 예상론자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이날 2건의 발표 직후 경기침체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시장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CNBC방송에 따르면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자문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올해 3분기 경기침체가 시작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바로 지금 이미 경기침체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벌써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 수석투자전략가도 "우리는 이미 `기술적 경기침체`에 들어섰지만 단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두어 개의 나쁜 경제 지표만 더해질 경우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진입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실시간으로 미 국내총생산(GDP) 전망을 집계하는 `GDP 나우`는 2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일 발표한 1.3%에서 7일 0.9%로 하향 조정, 경기침체 진입 가능성이 커졌음을 시사한 바 있다.
통상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경기침체의 정의로 받아들이는데, 지난 1분기 1.5% 감소한 미국의 GDP가 2분기에도 역성장할 경우 경기침체가 공식화할 수 있다.
줄어드는 가계 소득도 침체 우려를 더한다. 최근 미국의 저축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9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1분기 가계 순자산은 소폭이기는 하지만 2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고 CNBC는 전했다.
경기침체의 방어벽으로 여겨지는 고용 지표도 조금씩 약화하는 추세다.
미 노동부가 지난 3일 발표한 5월 비농업 일자리 수는 39만 개 증가해 시장 전망치(31만8천 개)를 큰 폭으로 상회했으나, 이는 최근 13개월 사이 최소폭 증가였다.
전날 발표된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2만9천 건으로 지난 1월 이후 5개월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CPI 보고서가 경기둔화의 공포를 키웠다며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격차가 좁혀지는 수익률 곡선 평탄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미 국채 수익률 곡선 평탄화는 경기둔화의 전조로 해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가들은 이날 보고서에서 "수익률 곡선 움직임은 연준이 장기적인 성장을 희생해서라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이는 우리의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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