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최근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유사한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인천지법 형사18단독 김동희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42·남)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김 판사는 또 A씨에게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지난 8월 11일부터 9월 27일까지 옛 동거녀 B씨에게 29차례 전화를 걸고 33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 스토킹을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가 건 29차례 전화 가운데 12차례는 B씨가 받지 않았으며 9차례는 수신이 강제로 차단됐다.
A씨는 B씨 집에 찾아가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고 "제발 가 달라"는 B씨의 말에 화가 나 현관문 잠금장치를 파손하기도 했다.
B씨와 동거하다가 지난 6월 헤어진 A씨는 "연락하거나 찾아오지 말라"는 부탁을 받고도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B씨가 받지 않은 부재중 전화와 수신 차단 전화도 모두 A씨의 스토킹 행위로 판단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정보통신망`이 아닌 `전화`를 이용해 음향이나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인 `글`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했다"며 "이런 행위는 스토킹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도 상대방이 받지 않아 벨 소리만 울렸고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최근 법원 판결들과 상반된 판단이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와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A씨와 유사한 스토킹 범행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두 판사는 "상대방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라거나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나 발신 번호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이들 판사는 모두 무죄의 근거로 17년 전인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는 스토킹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던 시기다.
최근 한국여성변호사회 성명을 내고 "(법원이)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만 해석해 피해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 이사는 "반복된 부재중 전화와 관련한 스토킹 사건의 유무죄가 엇갈리는데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어떤 판사한테서 재판받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앞서 인천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된 두 사건은 항소했다"며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 하급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적극적으로 항소해 유죄가 선고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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