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그동안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사회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들이 실적 개선과 소비자 보호보다는 `장기 집권`이나 `셀프 연임`에만 몰두하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위해 금융지주 이사회 운영 현황에 대한 실태 점검을 추진하고 이사회와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6일 밝혔다.
금융당국이 금융사 지배구조 투명성 이슈를 연일 거론하고 나선 것은 지난달 30일 금융위 업무보고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을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기관투자자의 적극적 경영 관여)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유가 분산돼서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금융지주를 포함한 대형 금융지주와 KT, 포스코 등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들의 CEO 승계 과정과 관련해 잡음이 이어지며 지배구조 선진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윤 대통령 지시 사항에 대해 후속 조치를 최대한 빠르게 마련하라고 내부에 지시한 상황이다.
금융위는 소유분산 기업들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및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 강화 등을 추진 과제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도 1분기 중 입법예고 할 예정이다.
이런 배경에서 금감원도 올해 주요 업무계획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및 이사회 기능 제고를 들고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금융지주 CEO는 3연임, 4연임 등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해왔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 회장직에 오른 뒤 2015년, 2018년, 2021년 잇따라 연임에 성공(4연임), 지난해 3월까지 무려 10년 동안 하나금융을 이끌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2014년 11월 취임한 뒤 2017년과 2020년 두 번 연임하고 현재 9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융지주 자리는 최소 3연임이 보장됐다`는 소리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CEO에 취임하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사외이사를 꾸리고 강력한 임원 인사권으로 `참호를 구축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독립적인 위치에서 경영진을 견제하는 목적의 이사회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융지주 이사회는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을 표하고 있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CEO 승계 제도 등을 이사회가 주도적으로 감독하고 들여다봐야 하는데, 장기 연임 체제가 구축돼도 이사회가 가만히 두고 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외이사들이 연임을 할 때마다 다시 추천을 받아야 하므로 CEO 사람들로 계속 채워지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며 "인센티브도 크게 없어 `적당히 있다가 관두면 된다`는 인식도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이사회 역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사회는 은행의 경영 전략, 내부 조직 및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 기구로서 기능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고 건전한 지배구조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 기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 이사회별로 최소 연 1회 면담을 하기로 했다. 또한 은행 이사회 구성의 적정성,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 기능 작동 여부에 대해서도 면밀히 점검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가 금융사의 지배구조 문제에 직접 관여한다는 측면에서 `관치`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에 대한 개입이 오히려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치고 정부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유도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CEO의 장기 집권으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하거나 소비자 보호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될 필요도 있어 보인다"며 "다만 이사회가 제대로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마땅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데도 금융당국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또 `손 놓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것"이라며 "욕을 먹더라도 필요한 부분은 제대로 고쳐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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