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마일리지' 비판에...백기 든 대한항공

전효성 기자

입력 2023-02-20 16:26   수정 2023-02-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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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오는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마일리지(스카이패스)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소비자 불만이 예상보다 거센데다 정치권에서도 질타를 쏟아내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20일 대한항공은 "마일리지와 관련해 현재 제기되는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며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소비자 적립 프로그램 시초는 `항공사 마일리지`

소비자 적립 프로그램의 시초는 1981년 아메리칸항공의 AAdvantage 프로그램이다. 마일리지(Mileage)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동거리(마일)에 따른 고객 혜택을 의미한다. 항공사의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것이 성과를 거두자 `포인트` `리워드` `적립` 등의 이름으로 유통·식품업계까지 퍼져나갔다. 대한항공은 지난 1984년 상용고객우대제도(FTBS)라는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고, 1995년 현재의 `스카이패스`로 이름을 바꿨다.

항공사 마일리지의 적립률은 일반적으로 8~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백화점(0.1%), 대형마트(0.1~1%), 편의점(1~2%) 같은 유통업체 적립률에 비하면 후한 편이다. 이처럼 높은 적립이 가능한 이유는 `항공사 마일리지`는 현금성이 `유통업체 포인트`보다 떨어지는데다, 빈 좌석을 보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원가 상승의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 "짧은 거리는 조금만, 긴 거리는 많이"

논란이 된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의 핵심은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 거리`로 바꾸는 내용이다. 지금은 국내선,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 미주·구주·대양주 등 5개 지역으로 마일리지를 공제했지만, 앞으로는 운항 거리별로 기준을 세부화(11개 지역)하는 것이다.

바뀌는 기준에 따르면 장거리 항공권을 구입할 때 쓰이는 마일리지는 늘어나고, 단거리 항공권은 마일리지를 덜 쓰게 된다. 비수기 편도 기준 LA·파리·런던 등지는 기존 3만 5,000마일에서 앞으로는 4만 마일로 늘어나게 된다. 뉴욕의 경우 현재는 3만 5,000마일만 쓰면 되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4만 5,000마일이 필요하다. 반면, 도쿄와 베이징 등 단거리 항공권은 현재 1만 5,000마일에서 1만 2,500마일로 마일리지 사용액이 줄어든다.

● 소비자 "적금 금리 낮춘셈" vs 대한항공 "더 많은 고객에 혜택"

이같은 개편안이 발표되자 항공 관련 커뮤니티, 마일리지를 장기간 모아온 고객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비싼값에도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 대한항공을 이용했는데, 제도 변경으로 인해 그동안 모아온 마일리지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누리꾼들은 "장거리 노선에는 LCC가 취항하지 못해 대한항공의 독점성이 높다"며 "그래서 티켓 가격도 높은 편인데 장거리를 중심으로 마일리지 사용액을 올리는 건 적금 금리를 일방적으로 낮춘 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더 많은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이번 제도 개편의 본질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다수 승객이 국내선과 단거리 노선을 이용하는데, 장거리 노선의 혜택 축소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쉽다는 주장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왕복 장거리 항공권 구매가 가능한 7만 마일 이상 보유 고객은 전체 회원의 4% 수준이다. 반면,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고객 중 국내선·국제선 단거리(일본·중국·동남아) 노선 이용 고객은 76%에 달한다. 장거리에서 마일리지 사용액을 높이고, 단거리에서 낮춘다면 훨씬 많은 고객이 혜택을 받는다는 논리다.

● "대한항공 마일리지 쌓기 어려워"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경쟁사들에 비해 쌓기 어렵다는 점도 이번 논란을 가열시킨 배경 중 하나다. 특히, 제휴 적립처가 적은 편인데 대한항공은 쇼핑 부문에서 이마트, 이마트24, 11번가 등 9개 제휴처에서만 적립이 가능하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쿠팡, 11번가, G마켓, 옥션, 롯데ON 등 이커머스 업체를 비롯해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과도 적립 제휴를 맺어둔 상태다. 쇼핑 부문에서만 37개 업체와 제휴가 맺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대한항공보다 적립이 쉬운 편이다.

신용카드 사용을 통한 항공 마일리지 적립 역시 대한항공이 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A카드사의 경우 대한항공을 적립처로 설정했을 때 1,500원 사용에 따라 1마일이 적립되는 반면, 아시아나항공을 적립처로 선택하면 같은 금액을 사용했을 때 2마일이 적립된다. B카드사의 상품 역시 대한항공(3,000원 당 1마일)의 적립률이 아시아나항공(2,500원 당 1마일)보다 낮은 편이다.

이처럼 제휴 적립의 폭이 좁기 때문에,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은 항공권 구매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쟁사보다 항공권 가격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항공권 구매에 따른 마일리지 적립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가격 책정에 따라 그 아래로 업체별 항공권 가격이 정해지는 편"이라고 전했다.

● 원희룡 장관 일갈…"고객은 뒷전" "빛좋은 개살구"

마일리지 개편안이 논란에 휩싸이자 정치권에서도 대한항공을 상대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항공분야 주무부처 장관인 원희룡 장관은 "고객은 뒷전", "빛좋은 개살구"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대한항공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 장관은 지난 1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항공사 마일리지는 고객에 진 빚`이라는 글을 올리며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은 고객들이 애써 쌓은 마일리지 가치를 삭감하는 것"이라며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항공사 마일리지는 적립은 어렵고 쓸 곳은 없는, 소위 `빛좋은 개살구다. 항공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번 개편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압박 강도를 더 높였다. 그는 "코로나 동안 살아남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도 못 할망정 국민 불안을 사는 그런 방법을 내놨다"면서 "이것(개편안)이 더 국민에게 유리하다고 가르치는 자세로 나오는 건 자세가 근본에서부터 틀려먹은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여당도 대한항공에 대해 강한 비판의 입장을 전했는데,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일본이나 동남아를 갈 때는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고, 장거리 노선은 마일리지를 모아 항공권을 구매한다"며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공제 방안을 재검토하라"고 17일 주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 백기 든 대한항공…"전면 재검토"

소비자 불만을 시작으로 정치권까지 대한항공에 대한 공세를 쏟아내자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개편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사방에서의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0일 "고객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관련 내용을 발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도 연기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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