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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받고 더 일하기'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기자

입력 2023-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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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지난해 8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열린 KB국민은행 '불법적 임금피크제'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을 감액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다면 임금을 깎는 것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최근 KB신용정보 전현직 근로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요.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만 55세부터 적용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2년 연장한 대신,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는 연봉의 45~70%를 업무 성과와 연동해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근무 기간은 늘어났지만 업무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더라도 더 적은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에 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최근 대법원 판결과 기존 판례를 기반으로 임금피크제 연령차별 여부에 대해 Q&A 형식으로 풀어봤습니다.

Q.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근로시간·근로일수 조정 등을 통해 임금을 감액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현행 '60세 정년제'는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해 2016~2017년부터 시행돼 왔지만 실제로 노동 현장에서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임금피크제는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성이 강한 우리나라의 임금체계 하에서 중장년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줄이고 청년의 일자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도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임금피크제 도입 실정은?

2021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64만3천여개 사업체 중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는 34만7천여개(21%)로, 이 중 22%(7만6,507개) 사업장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7만6,507개 사업체 중 87.3%(6만6,790개)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2013년 5월 이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습니다.

Q.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차이는 무엇인가요?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정년연장형·재고용형·근로시간 단축형, 4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정년유지형은 정년의 변경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로,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정년연장형은 기존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일정연령 이후부터 임금을 감액하는 유형입니다.

재고용형은 정년퇴직 후 재고용하는 것, 근로시간단축형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고용하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두가지 모두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 후 가능합니다.

국내에선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라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과정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많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적용 중인 사업장은 대부분 '정년연장형'을 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3년 이후 임금피크제 도입 업체 중 87.3%가 정년연장형을 선택했습니다.

Q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이 될 수 있다는데요?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분야에서 근로자를 차별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퇴직자 A씨는 B연구원을 상대로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으로 무효라면서 2014년에 임금차액 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합리적 사유 없는 연령차별은 무효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이 타당하지 않고,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임금 삭감에 걸맞은 업무 양·강도의 저감)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이라고 본 겁니다.

이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해당되는 사례였는데요.

다만 대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모두 무효(연령차별)은 아니며,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은 판단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Q.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 사례도 있나요?

고령자 고용안정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목적이 정당하고, 불이익을 보전하는 조치가 이뤄지는 등의 형태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면 연령차별로 볼 수 없습니다

법원은 지난해 2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다른 사건에 대해선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는데요.

C공단에서 일하던 근로자는 정년퇴직 전 1년 동안 공로 연수를 통한 근로 면제가 가능했고, 업무 시간 조정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당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Q. 정년유지형이 아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지?

대법원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연령 차별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동안 법원은 대다수 판례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도입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임금 감액이 발생하더라도 정년연장으로 얻는 경제적인 이익이 더 많고, 임금삭감에 따른 대상조치가 적절한 경우 '고령자고용법'의 고용상 연령차별(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에 해당하지 않아 연령 차별이 아니라고 판시했습니다.

그동안 근로자들이 임금을 깎는 것은 무효라며 KT, 삼성화재, 한국농어촌공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것도 '정년 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인 점' 때문이었고요.

다만, 명목상 임금피크제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용 절감, 직원 퇴출 등의 목적으로 특정 연령 근로자의 임금을 과도하게 감액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Q.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이 아니라는데, 왜 무효 판결이 나온 건가요?

이번에 KB신용정보가 패소한 것은 재판부가 "근무 기간이 2년 더 늘어났음에도 임금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KB신용정보 직원은 임금피크제가 없으면 만 55세 이후부터 원래 정년인 만 58세까지 3년간 직전 연봉의 300%를 받을 수 있는데요.

하지만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도입 전 직전 연도 연봉을 기준으로 임금이 45~70%로 줄어들게 됩니다.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부터 연봉이 전년의 최대 45% 수준으로 깎일 수 있다는 거죠.

사측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연령 차별이고 과반수 노조가 합의해서 도입된 제도"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차별한 사측의 제도"라고 판시했습니다

즉,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라 하더라도 임금 삭감이 과도해 불이익이 생긴 만큼, 무효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정년유지’과 달리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적법하고 정당하다는 기존의 판례를 뒤집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정년 연장이 임금 삭감의 '보상'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판단한 만큼, 이번 재판은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는데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KB신용정보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1심 무효 판결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 감소 등 근로자의 불이익은 매우 큰 반면, 그 불이익에 상응하는 대상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고령자고용법'에 위배된 것으로 본 사례로 판단된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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