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추 어디로…튀르키예는 왜 에르도안을 포기 못할까 [딥다이브 중동]

김종학 기자

입력 2023-05-27 07:30   수정 2023-05-27 08:33

[딥다이브 중동] (5) '술탄의 재림'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왜 에르도안을 포기 못할까


약 5만 명이 숨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도, 해묵은 부정 스캔들에도 그의 지지율은 흔들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기대와 달리 급진적인 이슬람주의를 앞세워 종신 집권의 길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는 인물. 바로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그의 초장기 집권을 가늠할 최종결선이 현지시간 28일 치러집니다. 이번 선거 직전 여론조사까지만해도 초반 야권이 분전했지만 집권 여당의 기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튀르키예 6개 야당이 뭉쳐 내보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주요 도시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중도층에서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죠. 이에 반해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 후보인 에르도안은 결선 막판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대통령 후보 결선 투표용지)

바로 지난 14일 1차 투표에서 3위에 올라 캐스팅보트로 여겨졌던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가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1, 2위간 표차이가 박빙으로 좁혀졌습니다. 현지시간 22일 앙카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안 대표는 "심사숙고 끝에 에르도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옳은 길이라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선거 최종 투표를 앞두고 튀르키예 외환시장과 주식시장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경제 부흥으로 집권을 연장해 평생 집권의 길을 걷는 듯 보이는 에르도안의 시대, 서방과 튀르키예 야권의 바람대로 이번에는 정말 막을 내릴 수 있을까요?



● 나토 핵심 군사 강국이지만…서방과 선 긋는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 안탈리아 등 아름다운 도시들, 그리고 하늘을 가르는 카파도키아 열기구의 풍광 사진과 케밥, 카이막 등 이색 디저트로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지정학적인 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유럽 방어의 최전선이자 방위산업에서 한국의 'K-방산'을 넘보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크라이나전에서 활약한 바이카르 테크놀로지(Baykar Technologies)의 무인기 TB 시리즈를 운용 중이고, 미국 등 개발 경쟁이 한창인 차세대 스텔스 무인전투기 크즐레마(Kizilema)를 만들어 비행까지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현대로템에서 흑표 전차의 기술을 받아 성능을 개량한 알타이(Altay) 전차, 지난달 진수식을 연 아나돌루(TCG Anadolu) 항공모함까지 갖추고 있죠. F-35 이착륙기만 빼고 웬만한 무기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바이카르테크놀로지스가 개발 중인 스텔스 무인기 크즐레마)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제조 역량으로 자국 군사력을 키우는 동시에 본인의 정치적 이미지를 강화하는데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튀르키예를 세운지 100년을 맞은 올해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나라로 일으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죠.

당초 대지진 피해와 지속된 경제난으로 지지율에 타격을 입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지만 '최저임금 55% 인상'과 대규모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앞세워 중도층을 흡수하며 집권 연장의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 경제학 상식 뒤집은 에르도안…"이대로면 제2의 베네수엘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장기 집권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의 남은 집권 기간 상식 밖의 통화 정책이 재연될 가능성을 두고 우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통계청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인플레이션율이 전년대비 85.5%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64.2%, 올해 4월 들어 40%대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올해는 더 낙관적인데 연간 평균 인플레이션은 24.9%, 내년에는 13.8%까지 낮아진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이터가 전문가들을 통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1.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튀르키예의 올해 평균 인플레이션 예상치는 약 40%, 정부의 공식 전망과 10%포인트 이상 벌어지고, 작년 실제 집계도 그 2배가 넘는 137.5%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월세 50만원에 단칸방을 구했다면 올해는 그 2배가 넘는 금액을 내야 하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1인당 GDP는 1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데, 주거와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뛰면서 높은 물가상승률에 적응하려는 국민들의 고통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미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해가며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시도도 튀르키예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금리인하에 반대하던 중앙은행 총재가 에르도안 임기 중 3명이나 교체됐고, 그런 그는 지금도 '금리를 높이면 물가가 오히려 오른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에도 올해까지 기준금리 인하, 돈 값어치를 낮추는 조치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연 14%였던 기준금리는 8.5%까지 낮아졌고,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속에 외국계 자금 이탈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죠. 이 여파로 달러 보유고가 줄고, 달러 대비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는 5년 만에 1/4로 줄었습니다. 튀르키예 국민들은 이제 4배나 더 비싼 값에 해외 물건을 들여와야하는 부담을 지고 있는 겁니다.

이스탄불 증시도 에르도안 장기 집권에 대한 불안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당일에도 -6%대 급락을 연출한 벤치마크 지수는 이번 주 판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일주일 만에 약 -5%, 올해 들어 이미 20% 넘게 하락한 상태입니다.



● 연임하면 대규모 프로젝트 속도낼 듯…30년 집권 눈앞

국민들은 이렇게 고통받고, 말도 안 되는 경제구조를 유지 중이지만,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은 더 큰 프로젝트와 산업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을 잇는 관문인 이스탄불 땅을 통째로 갈라서 45㎞길이의 운하를 만드는 18조원 규모의 이스탄불 운하를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매년 5만여 척의 선박이 오가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완할 항로로 만들겠다는 표면적 이유 외에 막대한 토목 공사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튀르키예 자국 브랜드인 'TOGG'를 통해 지난해 전기차를 처음 선보였고, 방위산업 기술로 수출을 확대하려는 구상도 내놓고 있죠.

(우크라이나 곡물을 싣고 보스포로우 해협을 통과 중인 선박)

이런 원대한 구상에도 에르도안이 2003년 총리 취임 이후 경제를 부흥시키던 당시와 현재 거시경제 여건에 변화를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여전합니다. 변칙적인 경제 정책에 외국 자본은 꾸준히 줄고 있는 것 역시 약점입니다. 우방국인 한국과 사우디 등이 통화스왑으로 안전판을 마련해줬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1년도 버티기 힘든 에르도안의 선심성 정책들은 최저임금을 60% 인상하고 식료품 보조금을 쥐어주며 재선한 베네수엘라 니콜라 마두로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2017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거쳐 연임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오는 28일에서 재차 득표에 성공할 경우, 10년 뒤인 2033년까지 튀르키예를 이끌게 됩니다. '21세기 술탄'으로 초장기 집권을 바라는 그의 바람대로 튀르키예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튀르키예 에르도안과 정상회담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연합,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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