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비롯해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영아가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이 가벼운 '영아살해죄'의 존치 여부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아살해죄는 6·25 직후인 1953년 9월 형법이 제정될 당시 만들어져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법 조문 자체가 전쟁 직후의 혼란한 상황을 담고 있어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는 점, 아동학대 등 다른 범죄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 등이 주된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미 국회에선 영아살해를 일반 살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형법 251조(영아살해)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혹은 양육할 수 없다고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동기나 양육 환경, 경제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일반적인 살인죄보다 가볍게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형법 제정 당시 휴전 협정이 맺어진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치안이 불안하고, 의료기술도 발달하지 않은 사회 상황을 고려해 산모의 인권과 자율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지만, 이런 법 취지가 현재 상황에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원치 않은 출산을 했더라도 가정 위탁이나 공개 입양 등 생명을 빼앗지 않아도 되는 여러 선택 방안이 있고, 양육 환경에 대해서도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도 늘어나는 등 여건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 범죄 등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 장애 및 전염성 질환이 확인된 경우 등 모자보건법 14조가 인정하는 사유에 대해선 낙태 시술도 가능하다.
일각에서 영아살해 혐의 자체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는 1994년, 스페인은 1996년, 독일은 1998년 각각 형법 개정을 통해 영아살해죄를 폐지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형법에서도 영아살해에 따른 감경 규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독일은 아동 유기를 가중해서 처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영아살해죄를 폐지하고 영아 살해를 일반살인으로 일원화하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영아 살해사건 중 미성숙한 산모가 극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범죄를 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법 자체는 존치하되, 상황과 요건을 고려해 감경 사유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이 실존하고, 특히 10대 미혼 산모의 경우 불안정한 정신상태에서 범행하는 경우가 많아 엄벌주의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며 "예전보다 나아졌다지만 낙태 시술이 그리 쉽지도 않고, 사회 시스템적으로 모자 보호가 그렇게 잘 돼 있다고 할 수도 없어 영아살해죄 폐지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아살해죄를 존치하되 성립요건을 보다 엄격히 판단하고, 그게 아니라면 영아 살해에도 살인이나 아동학대 살해 혐의 적용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성년자가 병원 밖 비정상적 장소에서 원치 않는 출산을 해 방치 등 부작위의 방법으로 살해하는 등 정말 불가피한 경우라면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단지 대상이 영아여서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 냉장고 사건처럼 연속해서 영아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경우라면 살인죄뿐 아니라 아동학대 살해 혐의를 적용해 가중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학대는 폭행, 상해, 유기 등이 다 포함된 개념인데 '정인이법'을 계기로 사회가 아동 보호에 공감대를 가진 만큼 앞으로 벌어질 영아 사건에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하는 걸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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