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원 변호사의 이의있습니다] 국선변호인, 도저히 못 믿겠다면 변경 신청 고려해봐야

입력 2023-08-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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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낯선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편지를 보내온 주소는 낯이 익다. 얼마 전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되어 담당했던 사건의 당사자가 수감되어있는 교정시설 주소다. 그 당사자와 함께 수감된 사람이 물어볼 것이 있다며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런 경우는 형사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어서 새로울 일은 아니지만, 이번 편지에는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편지를 보내온 사람도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어있는데, 그 국선변호인에게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다른 사람의 변호인이었던 변호사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싶어서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한 답을 인터넷편지로 보내주었다.

국선변호인의 불성실한 활동에 대해 피부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건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비용 부담을 이유로 변호인 선임을 망설이면서도 국선변호인은 열과 성을 다해 변호를 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을 토로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필자도 국선변호 활동을 이따금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선변호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제도다. 형사소송법 제33조는 제1항으로 피고인이 구속된 상태거나 듣기, 말하기에 모두 장애가 있는 경우 등에 변호인이 없다면 법원은 반드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주도록 하고 있고, 제2항으로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그밖에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사유가 있을 때 피고인의 청구에 응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주도록 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원은 피고인의 청구가 있으면 너그럽게 판단하여 가급적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주는 편이라고 하니, 형식적인 면에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어느 정도 잘 보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피고인에 대한 국선변호 뿐만 아니라 법무부에서는 성폭력 등 일정 범죄에 대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껏 선정된 국선변호인이 성실하게 활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국선변호인이 있으니 적절히 변호 활동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가, 서면이나 증거를 제 때 제출하지 못하는 등 안 하느니만 못 한 경우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건 당사자로서는 선정된 국선변호인에게 성실하게 변호하여 줄 것을 촉구함이 당연하나, 서두에 언급한 사례처럼 아무런 대꾸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법원규칙인 형사소송규칙은 제18조 제2항 제2호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국선변호인 변경 신청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니, 사건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국선변호인을 바꾸어 달라고 신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변경을 신청할 때는 현재의 국선변호인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다던가 하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국선변호인이 내가 하는 말을 안 들어준다거나, 감정적으로 서운하다던가 하는 사정만으로는 법원을 설득할 수 없다.

다만, 앞서 살펴본 형사소송규칙은 어디까지나 규칙에 불과하여, 사건 당사자가 선정된 국선변호인을 바꾸어달라고 법원에 신청할 법률상의 권리는 현행 형사소송제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의 실무상으로도 사건 당사자에게 국선변호인의 선정, 선정 청구에 대해서는 안내하지만 그 변경이나 선정 취소에 대한 안내는 별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최선을 다해 현재의 국선변호인으로부터는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없음을 소명하여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물론 국선변호인 변경신청권을 법률로 보장하는 경우, 이를 악용하여 소송을 지연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선변호인 변경신청권을 마련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난 2017년을 비롯하여 몇 차례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지만, 실제 개정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데에는 그러한 우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아쉬운 사람은 사건 당사자인 만큼 방어권 행사를 위해 앞서 살펴본 형사소송규칙상의 변경 신청을 스스로 적극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게 하려면 국선변호인의 선정, 변경을 비롯하여 제도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사원 변호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대법원 국선변호인(2023), 서울고등법원 소송구조(2023), 서울남부지방법원 일반국선변호인(2023), 서울북부지방법원 일반국선변호인(2023),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2023), 사단법인 동물보호단체 헬프애니멀 프로보노로 참여하고 있다.

<글=법률사무소 퍼스펙티브 민사원 변호사>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parkjs@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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