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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다가 아닙니다"…'하이브리드 근무'의 힘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기자

입력 2024-02-25 12:00   수정 2024-02-25 12:35



최근 대기업들의 '화끈한' 출산장려지원책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부영그룹이 아이를 낳는 모든 직원에게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기로 한 데 이어 쌍방울그룹도 셋째를 낳으면 최대 1억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롯데그룹은 올해부터 셋째를 출산한 전 계열사 임직원에게 카니발 승합차를 2년간 무료로 탈 수 있도록 렌트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파격적 현금 지원은 사실 일부 대기업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국내 사업체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선 교육비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1억 원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죠.

또 중소기업에선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어렵고, 추가 인력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커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육아휴직에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는 사업체는 300인 이상이 경우 95%에 달했지만 5~9인 사업체에서는 48%로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마냥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건 아닙니다.

육아휴직 대신 단축근로를 하거나 재택근무와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 근무'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중소기업 활용률 더 높은 이유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제19조의2)은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가진 근로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이용하면 주당 15∼35시간 이내로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데요,

만약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면 그 미사용 기간을 합산해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고,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모두 소진했다면 별도로 1년 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는 2만3,188명으로 전년(1만9,466명)보다 3,722명(19.1%)나 늘었을 정도로 현장 호응이 높습니다.

고용부는 지난 2019년 육아휴직과 별개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1년간 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이후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정부는 이에 사용 대상을 만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로, 기간도 최대 3년으로 늘리기 위한 법 개정도 추진 중입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특히 중소기업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부가 25일 발표한 기업 규모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률을 보면 근로자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활용하는 비율이 44.2%(10인 미만 26.8%, 10인~30인 미만 17.4%)에 달했습니다.

300인 이상 대기업 활용률(33.6%)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축근로를 육아휴직 대신 적극 활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되는데, 다양한 방식의 유연근무제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도 최근 내놓은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제도 국제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연근무 제도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제도 등 모성보호 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5위로 상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여성 경력단절 방지와 저출생 문제 해결에는 미흡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추가적으로 확대하는 대신 기업 인센티브 강화 등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출산율 제고가 모두 중요한 과제인만틈 노동시장과 단절되는 육아휴직보다는 일과 출산·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유연근무 등의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택+사무실 근무 '하이브리드 근무'로 육아 편해졌어요~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식의 유연 근무 형태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특히 엔데믹 국면에선 재택근무를 철회하거나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형 근무제도'를 시행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근무제도 실질적인 육아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기업 사례를 보면 해외송금기업 센트비는 근로자 166명의 55%(91명)가 사무실 근무(주 3~4일)와 재택근무(주 1~2일)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 회사 근로자들은 "유연근무가 일·육아를 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출퇴근 시간이 줄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늘어났다"며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화장품 제조업(OEM)을 운영하는 고운세상코스메틱의 경우 직원들의 지난해 자녀 출산율이 2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늘었는데요.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을 포함해 재택근무 횟수를 늘린 덕분입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관계자는 "2020년 1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택근무를 도입한 이곳은 사무직 56%가 월 4회 이상 재택근무를 활용한 결과, 직원들의 만족도는 2022년 87%에서 지난해 94%까지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포스코도 202년 국내 기업 최초로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도입해 워킹맘·대디가 근무 여건에 따라 일정 시간 재택근무를 신청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8세(초2)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은 전일(8시간),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특히 3년간 이 제도를 이용한 직원 중 남성 비율은 약 20%에 달해 '육아 대디'가 확산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또 이 제도를 포함해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들이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이용한 비율은 2019년 23.8%에서 지난해 38.4%로 매해 늘고 있다고 합니다.

● 유연근무제 정부 지원 늘지만…'의무화'는 아직

정부도 저출생 해법으로 유연근무의 중요성을 인식, 재택근무 컨설팅과 인프라 지원을 올해부터 유연근무 전체로 확대했습니다.

특히 육아기 자녀를 둔 근로자의 유연근무에 대해선 기존의 재택·선택근무 장려금을 월 최대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늘렸고, 20만원의 시차 출퇴근 장려금도 만들었습니다.

또 개별 근로자의 사정에 따른 소정근로시간 단축 장려금의 경우 최소 단축 기간이 1개월 이상이지만 임신기 근로자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2주로 완화했습니다.

사업장 전체의 평균 실근로시간이 2시간 이상 단축된 경우 30만원을 1년 간 지원하는 장려금 제도도 올해 신설됐죠.



하지만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기 위해선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다양한 유연근무제도 중 유일하게 근로시간을 근로자의 스케쥴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선택근무제'만 근로기준법 52조에 규정돼 있을 뿐입니다.

유연근무제는 사업장 특성에 따라 적용가능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법적으로 의무화하기에도 한계가 있는데요.

가령 제조업 등 현장 근무가 필수인 업종은 적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또 유연근무 도입을 확대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직접 장려금을 주는 제도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자율 방식 도입이라 인력난과 비용 부담이 큰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일·가정 양립 제도의 인지도와 사용 가능 정도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요.

'200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경우 100인 이상 사업체는 모른다는 응답이 전혀 없었지만, 5~9인 사업체는 35.3%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 하는 것이 전제로 하는데요,

우리나라만큼이나 '저출생'에 대한 위기감이 큰 일본에서 내놓은 파격적인 대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일회성이 짙은 현금성 정책보다는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재택근무 의무화와 같은 유연근무제 확대가 어쩌면 더 '확실한' 극약 처방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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