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올해 국내 상장사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습니다. 증권부 김원규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 기자, 올해 자사주 소각 규모는 어땠나요?
<기자>
올해 국내 증시에서 자사주 소각 공시 건수는 전체 92건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57건)와 비교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이미 자사주를 소각했거나 소각을 계획한 총 금액 역시 같은 기간 세배(2조5,700억 원→6조7,700억 원) 가까이 늘었습니다. 규모가 가장 컸던 기업은 SK이노베이션으로 약 7,9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혔습니다. 정유와 배터리 업황 둔화에 주가가 2022년부터 최근까지 3년 연속 하락 중인데, 주주환원 강화를 통해 주가 부양 의지를 시장에 내비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삼성물산(7,600억 원) 역시 비슷한 규모로, 약 2,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추가로 계획했습니다. 뒤이어 메리츠금융지주(4,000억 원), 쌍용C&E(3,700억 원), KB금융(3,200억 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소각하는 배경에는 밸류업 프로그램과 연관이 있죠?
<기자>
네, 자사주 소각은 밸류업 정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주주 환원에 소극적이거나 낮은 자본 수익률이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서입니다. 현재 정부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직전 3년에 비해 5% 이상 늘린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 주식을 이익잉여금으로 사들인 후에 이를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BPS)이 높아지기 때문에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정책으로 꼽힙니다.
<앵커>
세제 혜택을 볼 수 있고, 또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사주 공시 규제가 강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죠?
<기자>
맞습니다. 그 규제는 내년부터 자사주 보유 규모가 전체 발행 주식 수의 5% 이상인 상장사들에게 적용됩니다. 이들은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후 공시해야 합니다. 공시 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공시 의무 위반이 형벌과 과징금, 행정 조치 등이 부과되는 걸 고려했을 때 상장사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상장사들은 종종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냈지만,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다시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주주가치 제고 요구를 무마하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였습니다. 자사주는 그 자체로 의결권이 없지만, 거래 상대방에게 넘어간 자사주는 의결권이 다시 생기기 때문입니다. 상장사들이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넘겨 사실상의 자기 지분을 늘리는 꼼수로 활용했습니다.
<앵커>
세제혜택은 물론, 공시 규제 강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같은 흐름이 나타난다는 건데,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더 지속될까요?
<기자>
증권가에서는 올 연말까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가 매우 강한데다 공시 규제 강화뿐 아니라 세제 혜택 등 고려했을 때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밸류업과 관련된 법안이 모두 국회 통과를 보장하진 않더라도 밸류업에 동참하는 기업들은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달 세법 및 상법 개정의 정부안이 발표된 가운데 9월초에는 세법 및 상법 개정안의 국회 제출, 12월에는 국회 통과 순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의 절차가 이뤄질 전망입니다.
<앵커>
자사주 소각은 주가 부양책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이들 기업에 대한 증권가의 전망은 어떤가요?
<기자>
자사주 소각만 놓고 봤을 때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단순히 주주환원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이나 지속 여부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을 주주환원보다 주가관리나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자사주 소각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는 등의 행보가 있어야 주가 부양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증권부 김원규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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