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3대 경제 대국의 재정 파탄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마저 2026 재정년도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셧다운이 장기화될 저짐이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결별 선언으로 변수가 생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소득세 감면과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표방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출범한다.
재정발 인플레이션이 우려가될 때는 중앙은행이 길항 역할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도 정치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법정통화 실질 가치가 떨어져 금, 코인 등 화폐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이동하는 ‘탈화폐 거래(debasement trade)’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주목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9월 경제예측(SEP)에서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금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SEP과 함께 발표됐던 점도표상 중립금리 경로를 보면 2027년 말까지 금리인하 국면이 지속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는 정치화 논란이 지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첫째, 1913년 설립 이후 생명처럼 여겨왔던 미국 중앙은행(Fed)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각됐다. 예고도 없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인사 개편, 금리인하 요구 등으로 Fed 흔들기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FOMC 회의에서 극적으로 참가했던 스티븐 마이런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빅컷을 주장했다.
둘째, Fed 목표에 대한 재설정해야 한다. 물가 안정을 1선 목표로 여겨왔던 Fed가 2012년부터는 고용 창출을 2선 목표로 첨가했다. 하지만 양대 책무의 근간이 됐던 물가와 고용 간 필립스 관계 약화 등으로 금리 변경에 혼선을 빚어왔다. 최근에는 통계작성 여건 변화 등으로 고용 지표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지는 상황이다.
셋째, 경제지표(data dependent) 방식에 대한 재점검이다. 이 방식에 따라 통화정책이 운용되려면 경제지표는 현실을 신속하게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예측 지표도 최소한 추세는 맞아야 하고 예상치에서 실적치를 빼 백분화한 절대 오차율이 30% 이내로 들어야 하지만 그 어느 하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능력하다고까지 비하했다.
넷째, Fed 내 계량경제팀(Ferbus=FRB+US)의 예측력 제고도 시급한 과제다. 뉴애브노멀 시대에서는 모델에 의한 경제전망(SEP)은 예측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계열 자료의 연속성이 약화돼 가변수(dummy)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예측력이 가장 높다는 경기사이클연구소(ECRI)의 큐브 방식 도입 등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다섯째, 점도표(dot plot) 유용성에 대한 검토다. 트럼프 집권 1기부터 논란이 됐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의 정치화는 집권 2기 들어 더 심해졌다. 시장과 경제주체를 안내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금리 변경 의향을 나타나는 점도표가 트럼프의 의향을 반영한다면 그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섯째, 도입 때부터 한시적인 성격을 띠었던 평균물가목표제(AIT)를 폐지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발생 주요인이 총수요에서 총공급으로 바뀌는 과도기에는 특정 시기의 물가를 잣대로 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일정 기간 평균 물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안정하다는 인식에 따라 도입된 것이 AIT다. 코로나 사태 끝난 지도 5년이 돼간다. 자연스럽게 AIT 폐지해야 될 때도 됐다.
일곱째,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왔던 기준금리도 이제는 변경돼야 한다. Fed가 기준금리로 삼아왔던 FFR(연방기금금리)이 시장 금리 간의 체계가 약화돼 수수께끼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이후 기준금리를 1% 포인트를 낮췄는데 10년물 국채금리는 0.8% 포인트 상승했다. 9월 FOMC 회의에서도 1년 전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이제는 2015년부터 보조지표로 활용해왔던 on RRP(익일 환매 금리)를 채택하는 방안을 결정할 때가 됐다.
여덟째, 지니어스법 통과에 따른 고민 사항도 결정해야 한다. 디파이(DeFi)를 전제로 한 스테이블 코인이 통용되면 디지털 법정 화폐CBDC)를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병행해 나갈 것인가를 확정해야 한다. 결과에 따라 시뇨리지(seiniorage·화폐발행차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 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이 의외로 크게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아홉째, 9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내림에 따라 길게는 2019년부터 시작됐던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의 갈등이 누그러질지와 차기 의장이 누가 임명될 것인지도 9월 FOMC 회의가 남겨놓은 과제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의향을 보다 더 관철시킬 수 있는 후보를 차기 의장으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FOMC 회의에서 남겨놓은 Fed 과제는 우리 경제에게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커다란 변수다. 당장 9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내린 만큼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통화가치를 고려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지금 이동 이론대로 라면 Fed가 금리를 내리면 원·달러 환율은 내려가야 하지만 올라가고 있다.
올해 초에도 금리인하를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원·달러 환율이 내려갈 것으로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지금까지 원·달러 환율은 3% 정도 올랐다(원화 가치 절하). 같은 기간 중 엔화 가치가 2%, 유로화 가치가 6%, 심지어는 우리와 경쟁국인 대만 달러화 가치가 5% 정도 절상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년 12월 초 이후 계엄, 탄핵, 정권 교체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속에 거시 건전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외화 수급 요인이 우려된다.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되는 것은 대미 투자 방식이다.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를 유럽연합(EU) 방식과 일본 방식 중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후자다. 일본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미국에 특수인수법인(SPC)를 세워 이곳으로 45일 이내에 3500억 달러를 넣어야 한다.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대미 투자액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를 따져보면 가장 손쉽게 마련하는 길은 외환보유액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올해 9월말 현재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4220억 달러다. 보편적인 평가 잣대인 그린스펀-기도티 방식으로 추정한 적정수준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대미 투자 재원으로 조달하면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 후폭풍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국제 기채 시장에서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능만 하다면 가장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는 일부 공기업과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국가 차원에서는 쉽지 않다. 국가 부도 지표인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금리가 미국이 우리보다 2.5배 높은 여건에서는 조달 매력도 없다.
최후 방안으로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구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일인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NO(아니다)’다.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는 주체는 미국 중앙은행(Fed)와 한국은행이다. 우리의 요구를 미국 관세 협상단이 수용하더라도 Fed의 승인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세계 제일의 기축통화인 달러화 주조권을 갖고 있는 Fed는 적정외환 보유액 개념은 필요 없지만 제2선 외환은 필요하다.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가치 저장 기능과 같은 외환 보유의 3개 기능을 확보해야 하기 위해서는 달러화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와 대체성으로 보면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은 비기축통화국은 원칙적으로 대상국이 될 수 없다. 현재 Fed는 일본, 캐나다, 영국, 유로존, 스위스와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 때 맺었던 일몰 조항식 통화 스와프 체결도 지금은 쉽지 않다. Fed는 세계적으로 달러 경색 현상이 나타나 충격을 받아야 하고 역으로 미국 경제에 파급 효과((spill-back effect)가 우려될 때 우리와 같은 비기축통화국과 한시적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는다. 대미 투자액 마련은 한국만의 문제이고 미국 경제로서는 알버트 허쉬만 교수의 전후방 연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최대 변수로 대두되고 있는 대미 투자액은 원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방안 이외는 대안이 없다. 문제는 이마저도 원화의 낮은 국제화 정도, 국가 채무 급증 등으로 시장에서 소화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 기관을 대상으로 강제 인수시키더라도 국내 외환시장 여건상 10억 달러당 10원이 올라가는 여건을 고려하면 달러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요구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 체결 요구는 강하게 나오는 미국과의 협상력 증대 카드가 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후속 협상을 통해 대미 투자 절대액을 줄일 수 있다면 최선이지만 어렵다면 실행 기간을 늘리고 현금 이외 보증, 대출 등으로 실행 방안을 다변화시켜야 한다. 관세 협상과 앞으로 본격화될 환율 협상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을 보호 증대하는 데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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