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제약사인 일라이릴리(티커명 LLY)가 3분기 깜짝 실적을 내며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한때 GLP-1 시장을 선점했던 노보 노디스크를 제치고 미국 신규 처방의 71%를 장악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현지시간 3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일라이릴리 주가는 2.17%로 전날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틀째 급등하며 주당 862달러선을 회복했다. 다만 현재 주가는 최근 석 달간의 반등에도 지난 3월 기록한 고점(주당 935.63달러) 대비 약 7.7% 낮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전날 공개한 실적 발표에서 3분기 매출 176억 달러, 주당순이익(EPS) 7.0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인 매출 160억 1천만 달러와 EPS 5.69달러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4% 급증했다.
또한 이번 실적 발표에서 연간 매출 전망치를 630억 달러~635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기존 전망치(600억 달러~620억 달러)보다 최대 35억 달러 높인 수치다. 주당 조정 이익 전망치도 23달러~23.70달러로 올렸다. 일라이릴리는 이번 가이던스에 의약품 수입에 관한 관세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GLP-1 듀오 압도적 성장..선발주자 노보, 2년 만에 밀어냈다
실적을 이끈 핵심 제품은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Zepbound)와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다. 마운자로는 3분기에만 65억 2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09% 성장했다. 월가 예상치(55억 1천만 달러)를 10억 달러 이상 상회한 수치다.
2023년 11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시장에 진입한 젭바운드는 이번 분기 35억 9천만 달러의 매출로 전분기 대비 184% 급증했다. 시장 예상치 35억 달러를 소폭 웃도는 수치지만,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보다 늦게 출시됐음에도 이제는 처방량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젭바운드와 마운자로에 모두 사용되는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으로 미국 비만과 당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라이릴리는 주사형 비만 및 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5분기 연속 점유율을 확대했으며, 현재 해당 약물군 내 10건 중 거의 6건의 처방을 차지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GLP-1 비만 치료제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의 독무대였다. 위고비(Wegovy)로 시장을 개척한 노보는 압도적인 선발주자 이점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라이릴리는 티르제파타이드 기반의 젭바운드로 차별화에 성공해 꾸준히 매출을 늘려왔다. 기존 GLP-1 단일 작용제와 달리 GLP-1과 GIP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 메커니즘이 더 적은 부작용과 보다 체중 감량 효과를 높이도록 했기 때문이다.
◆ 주사 대신 1회 복용 알약으로.."승인 받으면 전 세계 바로 출시"
공급망 확보 전략도 명암을 갈랐다. 노보가 생산 차질로 공급 부족 사태를 겪는 동안, 일라이릴리는 텍사스 휴스턴에 65억 달러 규모의 신규 제조 시설 건설을 비롯해 공격적인 생산 투자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미 지난 9월 웰스파고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릭스 CEO는 "관세 때문에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다"라며 "2020년부터 공급 탄력성과 유연성을 위해 생산 전환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단일 공장이 아닌 여러 이중 공급망을 확보해야 손익을 지킬 수 있다"며 "2분기에만 생산량을 1.6배 늘렸고, 3분기에는 텍사스와 버지니아, 푸에르토리코에 신규 공장을 추가했다"고 강조했다.
유통 채널 다각화도 일라이릴리의 승부수였다. 일라일릴리는 이달 월마트와 제휴해 젭바운드 바이알 제품을 매장에서 직접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보험 즉 현금 결제만 가능한 일반 환자 대상으로 가격을 낮춰 접근성을 높인 것이다. 릭스 CEO는 인터뷰에서 "소비자 직접 판매와 현금 결제 옵션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차세대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옮겨가고 있다. 주사제 시장을 장악한 일라이릴리가 먹는 약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라이릴리는 경구용 GLP-1 제제인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릭스 CEO는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규제 승인 즉시 광범위한 글로벌 출시를 위해 생산 확대와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9월 번스타인 전략적 의사결정 컨퍼런스에서도 그는 경구용 비만약의 과도한 재고 구축 우려에 대해 “지난해 공급 부족 사태 이후 변화가 있었다"며 "규제 승인 즉시 광범위한 글로벌 출시를 위해 생산 확대와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고도 비만환자가 아닌 경증 비만 환자를 겨냥하고, 주사제보다 매일 한 알씩 복용하는 편의성에 익숙한 아시아권을 포함해 더 넓은 환자층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 2위로 밀려난 노보 노디스크의 무리수..화이자와 소송전 예고
대형 제약기업들의 점유율 경쟁과 판도 변화는 시장에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당초 화이자가 73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던 신생 비만 치료제 기업 멧세라(Metsera)를 최대 90억 달러에 사들이겠다며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화이자측은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신생 혁신 기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합병 계약 위반으로 미 연방법원에 이날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사안 해결을 촉구하는 등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들어 일라이릴리에 점유율 경쟁에서 역전당해 2위 자리로 밀려났고, 매출 성장률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등 경영진들의 쇄신 부담도 커지고 있다. 라스 레비옌 쇠렌센 전 최고경영자가 재단 의장으로 복귀했고, 마이크 두스타 신임 최고경영자는 9천 명의 인력 감원 등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최고경영자는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모두가 우리 위치를 원할 것"이라면서도 "이들을 방어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진 강점들을 실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댄 스코브론스키 최고과학책임자(CSO)도 “우리는 최초 혹은 최고의 분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파이프라인 등에서 우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 릴리 다이렉트로 유통망도 방어..비만약 넘어 면역 질환까지
막강한 시장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일라이릴리 역시 미국의 초당적인 가격 인하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유통 채널을 통한 약가 인하 등을 조건으로 의약품 관세를 유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향후 미국 내 투자 등에 따른 실적 변수도 고려할 요소다. 그럼에도 월가는 일라이릴리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CFRA 등은 이번 3분기 실적 이후 매수 의견을 재확인하는 월가의 긍정적인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국 최대 제약업체 CVS 공급망에서 배제되고도 릴리 다이렉트 등을 통해 기존 수요를 방어하고, 주요 기업 고객을 유지시킨 점도 월가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JP모건의 크리스 쇼트 애널리스트는 "CVS헬스가 젭바운드를 제외하고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를 선택했지만, 일라이릴리 제품에 대한 처방 변경이 최소한의 영향에 그쳤다”며 점유율에서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진단했다.
일라이릴리는 이번 실적을 이끈 비만과 당뇨 외에 유방암 치료제인 버제니오, 알츠하이머 치료제 키선라 등 혁신적 약물들의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미리키주맙(상품명 옴보)과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레브리키주맙(상품명 엡글리스) 등 면역질환 치료제 포트폴리오도 강화하고 있다. 데이브 릭스 최고경영자는 "비만과 당뇨는 전 세계적인 건강 위기"라며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솔루션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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