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직원들이 빗자루와 삽을 이용해 중국 전통 술 백주(白酒)의 원료인 밀과 찐 수수를 섞어 거대한 산을 만들고 있었다. 백주는 8번의 발효와 9번의 증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데 이를 위한 밑 작업의 일부다. 마오타이진에서는 여전히 고대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만들고 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술이 유명한 '마오타이주'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직접 발로 밀을 밟아 누룩을 만드는데, 참고로 이곳에는 단오절에 오직 여성만이 밀을 밟아야 한다는 풍습이 있다.

◇ 도시 곳곳이 '양조장'…지역 경제의 원천
마오타이진은 구이저우의 성도인 구이양으로부터 북서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술이 지역 경제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특유의 간장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마오타이 술을 판매하는 가게로 가득했다. 실제 현재 마오타이진에만 모두 31개의 술 제조 작업장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연간 생산 능력만 5만6,800톤에 달한다. 덕분에 마오타이진은 구이저우에서 성도인 구이양에 이어 두 번째로 잘사는 지역으로 꼽힌다.
마오타이주가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접대의 상징으로 여겨진 마오타이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를 걸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백주 제조사 구이저우마오타이(kweichow moutai)의 주가는 2021년 2천 위안을 돌파했다가 지금은 1,500위안 밑으로 내려왔다. 시가총액 순위도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다만, 최근 들어 주가는 중국 춘절 성수기의 영향으로 소폭 반등했다. 양조장 관계자는 "춘절을 앞두고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발 아래는 625m 협곡
구이저우에서는 마오타이주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화장(花江)협곡 대교'도 있다. 최고 높이는 625m로 지난해 9월 28일 완공됐다. 구이저우성 류즈(六枝)에서 안룽(安龍)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일부로 교량의 총 길이는 2,890m이다. 구이저우 교통투자그룹이 투자·건설을 맡고, 그룹 산하 구이저우 교량그룹이 시공했다. 투입된 철강의 양만 2만1천 톤(t)으로 22억 위안(약 4,600억 원)의 건설비가 투입됐다.
다리는 차량뿐만 아니라 사람도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강화유리로 협곡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은 교량을 단순히 차량 통행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관광 명소의 기능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개통 이후 지금까지 130만 명이 교량 내 도보 공간을 방문했다. 월평균 32만 명의 사람이 찾을 정도로 이 지역 대표 관광지가 된 것이다.
구이저우 교통투자그룹 관계자는 "두 행정구역을 오가는 데 예전에는 약 두 시간 걸리던 이동 시간이 1~2분으로 짧아졌다"고 말했다.
◇ '부이족'의 터전엔 봉우리의 숲 '만봉림'
구이저우에는 중국 소수민족인 '부이족(布依族)'의 터전이 있다. 이들은 만여 개의 카르스트 봉우리로 유명한 만봉림(万峰林)에 거주하고 있다. 부이족은 구이저우에서 소수민족 가운데 묘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민족으로, 이들은 대대로 전통을 이어오며 생활하고 있다. 만봉림 말고도 구이저우에만 18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만봉림을 방문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초록의 봉우리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그 주변에는 풍성한 유채꽃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귀주성관광청에 따르면, 만봉림의 일년 평균기온은 16~18도이고 혹한, 혹서의 기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만봉림에서는 매년 3월 하프 마라톤(약 21km) 대회도 열린다. 봉우리를 관람하기 위한 관광 코스가 마라톤 코스가 되는 것이다.

◇ 양명학 정신이 숨 쉬는 양명문화원
양명문화원을 가면 양명학 창시자인 왕양명(王陽明)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왕양명은 명(明)나라 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 철학가로 1506년 당시 환관이던 '유근(劉瑾)'의 미움을 사 구이저우로 유배를 왔다. 그때 당시 구이저우는 사람들에게 '뱀과 유령, 독기가 가득한 외롭고 험한 땅'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좌천당한 셈이다.
하지만 왕양명에게 유배 생활은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생활하며 깨달음 얻었다. 양명문화원에 따르면, 왕양명은 동굴에서 지내며 '성인의 도는 나의 본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양명학의 기초가 됐다. 그는 현지 백성들의 도움으로 서원을 세웠고, 특히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전파했다. 왕명문화원은 왕양명의 이런 철학적 업적을 보존하고 기리는 대표 장소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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