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이유로 대미 투자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총 3천500억달러 규모로 약속한 대미 투자 프로젝트는 일단 계획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미 법원 판결 이후에도 투자 후보 사업 선정과 관련한 절차를 중단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자동차·철강 등에 적용 중인 품목관세는 여전히 유효하고, 반도체·바이오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 가능성도 남아 있어 대미 통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현재 대미 투자를 위한 기금과 기구 마련을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지만, 신속한 대미 투자를 위해 투자 후보 프로젝트 검토를 위한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이행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 검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미 통상 환경이 한국과 비슷한 일본이 먼저 총 360억달러(약 52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를 확정한 데 이어 2호 프로젝트 선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한국의 투자 속도에 불만을 표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우회하고, 사업성 있는 현지 투자 프로젝트를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후보 검토에 착수한 것이다.
앞서 일본은 미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발전소, 텍사스주 석유·가스 수출 시설, 조지아주 합성 다이아몬드 제조 설비 등 3개 사업을 첫 프로젝트로 선정했다. 또 원전, 구리 정련, 배터리 소재 등 투자를 2호 프로젝트 후보로 올려 미측과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이 관심을 보이는 발전, 에너지, 핵심광물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구체적 투자 분야와 일정 등을 조율하며 대미 투자 프로젝트 확정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판결 직전 박정성 산업통상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실무단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미 상무부 등 관계자를 만나 대미 투자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국회에서 대미 투자를 위한 투자기금(펀드) 조성 및 투자위원회 구성 등 법적 근거를 담은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일정 역시 기존 계획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전날 미 연방대법 판결 직후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는 예정대로 오는 24일 입법공청회를 개최하고 특벌법 제정을 위한 절차를 변함 없이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미투자특위는 활동 기한인 다음 달 9일 전에 입법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다는 계획으로, 여야는 다음 달 5일 본회의를 열어 특별법을 처리할 예정이다.
다만, 진보당과 사회민주당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 논의를 전면 중단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평을 내는 등 일각에서 대미 투자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통상 당국은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며 대미 투자는 일단 기존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부 김정관 장관은 전날 미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판결의 영향과 대응 방향을 점검하면서 한미 관세 합의 이행과 관련해 그간 미국 측과 긴밀히 진행해 온 우호적 협의를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산업부는 23일에도 김 장관 주재로 민·관 합동 대책 회의를 열어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따른 국내 업종별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할 예정이다.
통상 당국은 일본과 대만 등 한국과 비슷한 대미 통상 환경에 놓인 국가들이 이번 판결에도 대미 투자 계획을 수정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행보를 보이는 것이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글로벌 관세'를 10% 부과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바로 다음 날 이 관세를 10%에서 1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관세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관세법 338조, 수입 라이선스 수수료 등을 거론하며 앞으로 더 많은 관세를 거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연방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대미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기존 합의를 수정하려 시도한다면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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