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렀던 가격 터질라…석유 최고가격제 '딜레마'

입력 2026-04-26 15:17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의 출구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초기에는 국내 유가 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전쟁 장기화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석유 소비를 억제하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서다.

현재 정부는 2주 단위로 국제유가 변동을 반영해 정유사의 출고 가격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격을 완전히 고정하지 않고 변동을 일부 반영하는 구조지만, 실제 국제 가격 흐름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2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할 때 현재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가 리터(L)당 2천200원 내외, 경유는 2천800원 내외, 등유는 2천500원 내외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2천원 선임을 고려하면 소비자는 이 제도 덕분에 L당 800원 정도의 인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의 이면에는 인상 억제분이 쌓여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물가 관리와 서민 경제 부담 등을 고려해 국제가격 인상분보다 낮은 수준으로 상한액을 조절해왔는데, 그 결과 2차 최고가격 결정 때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에 달한다.

제도를 갑자기 종료할 경우 이 억제분이 한꺼번에 가격에 반영되면서 유가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해외에서는 유사한 사례에서 급격한 가격 충격이 발생한 바 있다. 파키스탄은 2022년 2~5월 가격 동결 해제 이후 휘발유 가격이 66% 급등했고, 헝가리도 2021~2022년 가격상한제 종료 이후 수급 불균형과 가격 급등을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를 무한정 연장하기에는 정유사가 입는 손실 보전을 위한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 적용 대상인 휘발유·경유·등유의 국내 일일 소비량은 약 100만∼120만 배럴에 달한다. 정유사 공급 단계에서의 가격 차액을 L당 100∼200원으로만 잡아도 정부가 부담해야 할 월 손실 보전 규모는 5천억원에서 1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제도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단계적 축소와 연착륙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제 유가 하락 국면에서도 최고가격을 동결한 것도 이러한 출구 전략의 일부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 시에 최고가격을 동결해 그간 쌓여온 누적 인상 억제분을 줄여 나감으로써 제도 해제 시점의 충격을 미리 완화하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최고가격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유류세 조정과 취약부문 직접지원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출구 시점을 구체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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