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정상회담이 예상대로 큰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 선진국 국채금리가 일제히 급등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란과의 전쟁 중에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를 추진했던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4년 전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파동을 몰고 왔던 트러스 위기설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이다.
고압경제란 1960년대 미국과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에 아서 오쿤 당시 예일대 교수가 제시한 정책 처방을 말한다. 핵심인 노동시장에 적용하면 재정과 금융 완화를 통해 노동 수급 여건에 초과 수요를 발생시키면 임금이 올라간다. 임금이 ‘그냥 쉼(take a break)’ 만족도보다 높아지면 자발적, 비자발적 실업자 모두 고용시장에 들어온다.
오쿤 교수는 1960년대처럼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도될 때 실업률을 1%를 낮추면 성장률이 3%까지 높일 수 있다는 오쿤 계수를 고안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문제는 베트남 전쟁 당시와 달리 최근처럼 국가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은 여건에서는 고압경제에 따른 후유증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반복되는 선진국 국채 파동의 발단은 권력욕이 강한 통수권자의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 때문이다. 한번 쓰면 줄이기가 어려운 재정에 대해 각종 규제뿐만 아니라 의회, 중앙은행 등의 견제를 무시하고 압도한다는 차원에서 붙여진 용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중앙은행(Fed) 흔들기가 대표적인 예다.
재정 지배로 우려되는 것이 ‘부채의 화폐화(bond monetization)’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여건에서는 전쟁 재원 확보 차원에서 발행한 국채는 민간에서 소화되기가 어려워 중앙은행이 사줘야 한다. 선진국 재정 사정이 갈수록 악화되는 점을 고려하면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통수권자일수록 이 방안에 대한 유혹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통수권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No(아니다)’다. 오히려 영국의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하면 더 강하게 중앙은행을 지배하는 ‘재정적자와 포퓰리즘 간 죽임의 악순환 고리(deficit populism doom loop)’가 형성될 것으로 경고했다.
재정이 중앙은행까지 지배하면 물가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란 전쟁 발생 이후 선진국의 물가는 현재보다 기대, 단기보다 장기일수록 기대 물가가 높다.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여건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각국 중앙은행이 통수권자의 요구대로 금리를 내리면 물가는 말이 뛰는 식으로 올라갈 캘로핑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기에 미치는 효과도 의문시된다. 케인스언의 재정지출 승수효과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는 3배를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1배 내외까지 떨어졌다. 선진국처럼 국채 부채가 위험수위가 넘은 여건에서는 국채 발행에 따른 구축 효과로 오히려 물가 상승 속에 경기가 침체되는‘재정 긴축(fiscal stagnation)’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정책 수용층인 국민은 더 어렵게 된다. 재정 지배로 물가가 올라가고 경기가 침체돼 소득이 줄고 실업자가 늘어나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 고통은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트럼프 정부의 경제 성과 평가 잣대인 경제고통지수(MI=물가 상승률+실업률)는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주목되는 점은 5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율과 예상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지금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미국 국민의 이런 기대와 예상을 잡지 못하면 올해 11월에 치를 중간선거에서 패배는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도 3년 이후에 치를 대선에서 꿈꾸는 장기 집권 야망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국채 투자자도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높아지는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해 국채를 사들이지만 재정 지배로 국채금리가 거꾸로 올라가면 손실이 난다. 국채 투자 성과는 보이지 않는 정책금리가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된 보이는 국채금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트럼프 정부가 관세정책을 추진할 때 재무부가 주관해 ‘스텔스 양적완화(QE)’를 병행해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세를 부과할 때 국채 발작이 일어나고 국채금리가 급등해 국가부도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관세를 부과할 때 국채시장 안정방안을 병행하지 않으면 국채금리 상승과 국가부도 위험 간 악순환 국면에 처할 확률이 높다.
재정 지배의 궁극적 모습은 어떻게 될 것인가. 케네스 로코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재정이 불안하고 △금리가 높으며 △정치가 마비돼 있고 △충격이 오는데 위정자가 느끼지 못할 때 부채 위기가 온다는 4단계론을 제시하면서 지금 선진국은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고 진단했다.
현시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절실한 것은 재정 지배가 아니라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다. 재정 건전화란 단순히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austerity)이 아니라 공공기관과 공무원 수 축소, 각종 위원회 폐지, 경직성 항목을 투자성 항목으로 조정하는 페이 고(pay-go), 균형재정승수가 ‘1’인 점에 착안한 간지언 정책 등으로 재정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말한다.
한국도 40년 뒤에는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대비 173%에 달할 것이라는 기획재정부의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잠재 성장 기반이 약화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반면 재정 지출은 계속 늘어난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앞으로 국가부도 문제가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채무 문제는 경제단위로서 재정이 민간과 다른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을 취하는 재정은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을 취하는 민간과 건전성 판정 기준이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은 흑자를 내야 하지만 재정은 적자를 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
공권력이 뒤받쳐 주고 있는 재정이 흑자를 내려면 증세를 도모하거나 재정지출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면 국민으로부터 조세저항이 심하고 이미 세율이 부담되는 ‘비표준 지대(래퍼 곡선상 세율과 세수 간 역비례 구역)’에서는 경기를 침체시켜 재정수입이 감소하는 악순환 국면에 처할 수 있다.
재정이 적자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이 나쁘다는 선입견과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것도 잘못됐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더라도 관리만 가능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관리 시기도 국가채무가 일단 위험수위가 넘으면 국가신인도 추락 등의 부작용이 큰 만큼 ‘사후’보다 ‘사전’적인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사전방안은 통화 준칙의 필요성과 실행방법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국민경제 생활에 가장 보편적인 영향을 주는 금리 변경을 몇 명의 보드 맴버(우리의 경우 금융통화위원)에 재량적 판단에 맡겨서는 안된다. 목표선을 정해 물가가 그보다 높으면 금리를 올리고 낮으면 내려야 한다는 것이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의 견해다.
같은 맥락에서 재정 준칙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GDP의 일정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말한다. 통화 준칙보다 경합성과 배제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공공성이 강한 재정 준칙은 더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이 때문에 법적 근거는 가능한 최상위법으로 하되 관리 기준은 엄격히 규정하고 적용해야 하며 위반할 때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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