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채권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 상품 운용 과정에서 고객에게 손실을 입힌 증권사에 손해액의 60~7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투자일임업자의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을 인정한 최초의 조정 결정이다.
분조위는 A증권이 자본시장법상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와 충실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30일 밝혔다. A증권은 고객의 채권형 랩 상품을 운용하면서 시장 금리보다 높은 가격(낮은 금리)으로 기업어음(CP)과 채권을 매입하고, 상품 만기보다 훨씬 긴 장기 자산을 편입하는 이른바 '만기 불일치(미스매칭)' 전략을 쓰다 손실을 입힌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형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고객과 1대1 계약을 맺어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으로, 법인 고객의 단기 자금 운용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문제가 된 것은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CP 가격이 급락한 구간이다. 손실이 발생하자 고객과 증권사 간 분쟁이 잇따랐다.
이번 사건에서 신청인 B씨는 지난 2023년 3월 450억원과 350억원을 각각 목표 수익률 4.3%의 채권형 랩에 가입했다. 다만 A증권은 만기가 2개월 미만 남은 시점에 잔존 만기가 10개월인 채권을 편입하고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해 결국 4억6천만원의 손실을 입혔다. 신청인 B도 150억원을 투자했다가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
분조위는 A증권이 시장 가격(민평금리)보다 비싸게 CP·채권을 매수한 행위 자체가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라고 봤다. 또 고가 매수의 동기가 다른 고객의 목표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한 이른바 '제3자 이익 도모'였다는 점, 과거에 유사한 불건전 영업으로 제재를 받고도 위법 행위가 재발했다는 점도 증권사 책임을 가중하는 요소로 판단했다.
손해액은 불법 행위가 없었다면 받을 수 있었을 목표 수익률 기준 원리금과 실제 상환액의 차이로 산정됐다. 해당 증권사가 과거 유사 상품에서 93.6%의 비율로 목표 수익률을 실현해온 점, 목표 수익률을 증권사가 스스로 제안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고객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상 비율은 신청인 A에게 70%(12억6천만원), 신청인 B에게 60%(3억9천만원)를 각각 적용했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은 고객 재산을 위법하게 운용할 경우 행정 제재에 더해 민사 책임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앞으로도 증권사의 건전한 채권 운용 관행 정착을 유도하고 소비자 권익 보호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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