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력이 매달 3만명 이상씩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자원입대자가 좀처럼 늘지 않자, 러시아 당국이 거리에서 남성을 붙잡거나 학생을 속여 계약서에 서명하게 하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병력을 채우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이 같은 실태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연간 40만9,000명이라는 신규 입대 목표치를 지방자치단체별로 할당해 내려보냈다. 최대 450만루블(약 7,700만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현금 보상을 내걸었지만 자발적으로 입대하려는 이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탈영 지원 비정부기구(NGO) '겟 로스트'의 그리거리 스베르들린 대표는 "러시아군이 사람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동원령 선포를 미루고 있어 국방부가 온갖 사람들에게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 단체들은 당국이 폭력적인 수단과 속임수까지 동원해 병력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증언한다. 러시아 남부 펜자에서는 경찰이 직장을 습격하거나 길거리에서 남성들을 연행해 군 모병소로 끌고 간 뒤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울리야노프스크에서는 한쪽 눈을 잃은 남성이 강제로 입대 계약을 맺은 사례가 있었고, 로스토프에서는 경찰이 전선 투입을 목적으로 공장 노동자 35명을 구금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지자체와 경찰이 채무자, 최근 전역한 징집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남성 등 이른바 '취약계층'의 신원 정보를 확보해 이들의 집과 직장을 찾아가 입대를 압박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극동 하바롭스크주에서는 지난해 2,500건의 면담을 거쳐 32명이 입대했는데, 이 가운데 28명이 형사 사건 피의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싱크탱크 국제안보연구소(SWP)의 러시아 전문가 야니스 클루게는 "지자체는 누가 빚이 있는지, 누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지, 누가 최근 운전면허가 취소됐는지를 파악해 이들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의료 관련 자격증을 가진 여성에게 군 복무 기록 확인을 명목으로 소환장을 보내는 사례도 있으며, 이런 소환장이 정부에 반기를 든 활동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무리한 병력 충원에도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고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코프먼 선임연구원은 "입대율을 높이거나 동원령을 내리지 못한다면 러시아군은 다시 고갈되기 시작해 결국 전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압적 모병이 기승을 부리면서 탈영도 늘고 있다. 인권단체 '피스 플리'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최소 2만8,000명이 복무 이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실제 탈영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오는 9월 하원(국가두마) 선거 이후 2022년 가을에 이은 2차 동원령이 내려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많은 러시아인이 해외 탈출용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러시아 국방부에 가까운 한 관계자는 추가 동원령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원된 병력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고 상당한 규모의 탈영까지 이어질 경우 푸틴 정권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ddehg@hankyungtv.com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