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는 돈을 잘 버니까 좋은 주식이고, 스페이스X는 적자니까 나쁜 주식일까?"
SK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 60조 5426억원을 기록하며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이익을 많이 낸 회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반대로 스페이스X는 5410만 달러(약 742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죠. 하지만 기업가치 측면에서는 스페이스X(1.91조 달러)가 SK하이닉스(0.88조 달러)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핵심은 기업의 성격마다 가치를 평가받는 지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보유한 종목을 분석할 때 어떤 지표를 꺼내야 할지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 PER, 본전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알아볼 지표는 주가수익비율을 뜻하는 PER입니다. 회사가 1년 동안 버는 순이익과 주가를 비교하는 방식이에요.
치킨집을 10억원에 인수했는데 1년에 1억원씩 순이익이 난다면 본전을 찾는 데 10년이 걸리게 됩니다. 이걸 'PER 10배'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꾸준히 돈을 버는 우량주를 평가할 때 유용합니다. 동종업계 기업의 수익성을 비교할 때 특히 좋죠. A반도체 기업은 PER이 10배, B반도체는 5배라면 후자가 훨씬 매력적인 종목인 거죠.
한계도 존재합니다. 지금은 돈을 잘 버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산업 자체가 꺾이는 상황이죠.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익이 꺾일 운명이라면 현재 PER이 3~5배로 낮아도 언젠가는 PER이 10배, 20배, 심하면 마이너스(적자)로 전환될 수 있죠. PER이 낮은 것을 넘어서 해당 산업이 위축 국면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반드시 살펴봐야 합니다.
● PBR, 회사가 망하면 얼마쯤 찾을 수 있을까요
PBR은 주가순자산비율로 회사가 가진 재산과 주가를 비교합니다. 지갑 안에 1만원이 있는데 지갑을 통째로 5천원에 판다면 PBR은 0.5배가 됩니다. 포스코나 KB금융처럼 대규모 공장이나 금융 자산이 많은 업종을 볼 때 주로 씁니다.
이익은 출렁일 수 있지만 회사가 가진 자산이 많아 주가 하락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회사가 내일 문을 닫는 상황에 처했다고 해보죠. 회사는 망했지만 회사가 가진 부동산, 채권 같은 자산이 충분하다면 주주들은 이것들을 팔아 나눠가져서 원금을 찾을 수 있습니다. PBR의 매력입니다.
PBR도 맹점이 있습니다. 장부에 1만원짜리 기계로 적혀 있더라도 낡아서 중고로 처분할 때 고철값 1000원 밖에 받지 못한다면 장부 가치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회사가 가진 자산의 질을 반드시 따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 PSR, 덩치가 얼마나 빠르게 커지고 있을까요
PSR이라는 지표도 있습니다. 주가매출액비율이라는 뜻인데 매출액과 주가를 비교합니다.
스페이스X처럼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느라 적자인 기업이 가치를 증명할 때 씁니다. 당장은 적자여도 매출이 매달 두배씩 늘어나는 상태라면 언젠가 흑자 전환도 기대할 수 있겠죠. 회사의 덩치가 커지는 '성장 속도'에 점수를 주는 방식입니다.
PSR의 한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힙니다.
산업 내 독점력을 바탕으로 언젠가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적자니까 외부 투자금에 의존하는 경향도 있겠죠? 여러가지 이유로 투자금이 줄어들게 되면 주가는 신기루처럼 폭락할 수도 있어요.
● EV/EBITDA, 내 지갑에 들어오는 현금은 얼마나 될까요
회사는 돈을 버는게 끝이 아닙니다. 세금도 내야하고, 비싸게 산 장비가 시간이 지나서 가치가 깎이는 감가상각도 겪습니다. EV/EBITDA는 세금이나 감가상각처럼 장부에서만 빠지는 비용을 제외하고 '회사 지갑에 들어온 진짜 현금'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요.
과거 쿠팡이 EV/EBITDA 지표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막대한 규모의 물류센터를 지었는데 물류센터의 장부상 가치는 계속 하락하기 때문이죠. 장부상으로는 이익이 적어 보여도 실제 현금 흐름은 튼튼하다는 걸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 지표를 강조했던 역사가 있죠.
문제는 기계나 물류센터 같은 설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고장 나서 언젠가 막대한 돈을 들여 새로 사야 하죠.
워런 버핏은 이 지표를 맹신하는 태도를 두고 "이빨 요정은 새 기계를 사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빨 요정은 아이가 빠진 치아를 베개 밑에 두면 잠든 사이에 몰래 돈을 놔두고 가는 서양 동화 속 존재인데요. 낡은 기계가 고장 났을 때 요정이 나타나 공짜로 수리비를 내주지 않는다는 뼈 있는 지적입니다.
감가상각비를 현 시점에서 제외한 것이 EBITDA입니다. 이 지표를 유독 강조하는 기업을 볼 때 '언젠가는 막대한 현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아이스크림은 YoY, 반도체는 QoQ
실적을 어느 시점과 비교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계절을 타는 업종인지, 사이클을 타는 업종인지를 구분해서 봐야죠.
계절성이 강한 업종은 1년 전과 비교하는 YoY(전년 동기 대비)를 봐야 합니다. 휴가철에 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항공업, 단가가 높은 겨울옷이 4분기에 잘 팔리는 백화점주가 대표적이죠.
이들 실적을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실적이 폭락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깁니다. 계절성이 강한 유통, 항공, 주류 등은 1년 전과 비교해서 올해 장사를 잘했는지 따져야 합니다.
QoQ(전분기 대비)는 직전 분기와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산업 사이클에 의존하는 업종에서 주로 쓰입니다.
대표적인게 반도체 업종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글로벌 D램 가격과 연동됩니다. 지금은 실적이 부진해도 D램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을 시작했다면 반도체주 주가는 상승을 시작하죠.
현재 반도체주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D램값이 오르고 있지만 '다음 분기에도 D램값이 더 오를 수 있을까' '상승폭이 줄지 않을까' 이런 불안감이 퍼진 겁니다. 이번 분기에 호실적을 냈더라도 직전 분기와 비교해 수익 성장세가 둔화된다면 '반도체 사이클이 피크를 찍었다'고 판단하고 주가는 내리게 됩니다.

● 종합: 돈 잘버는 SK하이닉스보다 적자 스페이스X가 비싼 이유
서두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은 4배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습니다. 순이익만 보면 당장 사야 할 엄청난 저평가 주식처럼 보이죠.
하지만 주가가 시원하게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의 시선이 반도체 업황 둔화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호황이 이미 정점을 찍었을 수 있고 곧 실적이 꺾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것이죠. 지금 당장 돈을 잘 벌어도 앞으로 이익이 줄어들 전망이라면 현재의 PER 4배는 싼 가격이 아니게 됩니다.
반면 적자를 내는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가 더 높은 이유는 성장성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적자지만 △우주 산업의 전망 △로켓 재사용 같은 기술력 △위성 인터넷을 장악한 스페이스X의 독점성에 시장이 프리미엄을 주고 있는 겁니다. PER 같은 수익성 지표로 바라보면 가치없는 주식이지만, PSR 같은 성장성 지표로 보면 기대해볼만한 종목인 셈인 거죠. 물론 점차 시간이 지나며 PER 같은 수익성 지표로 가치를 증명해야할 순간이 오겠죠. 과거 테슬라가 그랬던 것 처럼요.
결국 주식 시장에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단 하나의 투자 지표는 없습니다. 내가 투자한 기업이 든든한 자산이 있는지, 적자라도 폭발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산업 사이클에 민감한지 비즈니스 모델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보유한 종목을 분석하기에 적합한 지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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