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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일상을 바라보다'…우고 리(Ugo Li), ‘영원한 일시성’展 개최

입력 2026-09-18 15:32   수정 2026-09-18 15:41

'잠시 멈춰 일상을 바라보다'…우고 리(Ugo Li), ‘영원한 일시성’展 개최

한·프 수교 140주년,서울아트위크 공식 선정 야수파 색채와 동양의 의경·여백 미학의 만남 일상에서 찾는 소중한 순간..캔버스에 담다
 작품 앞에서 포즈 취하는 '우고 리(Ugo Li)' 작가
갤러리 비선재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화가 우고 리(Ugo Li)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영원한 일시성(Permanent Temporary)》을 개최한다.

전시는 2026년 8월 31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갤러리 비선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예술 교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2026서울아트위크 공식 선정 전시로도 이름을 올렸다.

동서양 미학의 경계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정물화
중국계 예술가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고 리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다. 동서양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경험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조형 언어로 나타난다.

작가는 앙리 마티스로 대표되는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와 동양 문인화의 ‘의경(意景)’ 및 여백의 미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합한다.

카드뮴 레드, 세라믹 블루, 황색 등 대담한 색채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도 사물의 배치와 여백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강렬한 색과 즉흥적인 붓질 속에서도 차분하고 시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우고 리 회화의 특징이다.

부엌 식탁에 응축된 시간과 기억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공간은 일상적인 부엌의 식탁이다. 맥주병과 와인병, 과일, 꽃, 식기 등 평범한 사물들이 그의 캔버스에서는 시간과 기억을 담는 중요한 대상으로 변한다.

우고 리에게 식탁은 단순히 사물이 놓이는 공간이 아니다. 사물이 존재하고 변화하며 결국 사라지는 과정이 펼쳐지는 하나의 ‘연극적 무대’다. 전시 제목인 ‘영원한 일시성’은 이러한 작가의 시선을 함축한다.

화요일에 사온 꽃이 며칠 뒤 시들고, 다 마신 술병이 식탁 위에 남아 새로운 기억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작가는 바로 그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회화를 통해 찰나의 시간을 붙잡는다.

텍스트와 타임스탬프, 찰나를 기록하는 장치
우고 리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화면에 직접 적어 넣은 텍스트와 시간 기록이다. 작품 속 문장은 단순한 제목이나 설명이 아니라 작가가 그림을 그리던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기록하는 장치다. 여기에 ‘15:00’, ‘15:16’, ‘15:18’과 같은 구체적인 타임스탬프가 더해지면서 한순간의 풍경이 캔버스에 고정된다.

<The permanent temporary, 영원한 일시성> 100 x 72cm(2026)
대표작〈영원한 일시성(Permanent Temporary)〉은 만개한 데이지와 싱그러운 과일을 통해 풍요로운 순간 역시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용과 기억 사이(Between Use and Memory)〉는 크로넨버그와 칭따오 맥주병에 꽃을 꽂아 소비의 흔적을 기억의 매개체로 바꾸고, 분 단위의 시간 기록을 통해 식탁 위를 지나간 햇살의 순간을 붙잡는다.

디지털 에페메라 시대, 일상을 다시 바라보다
우고 리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특별한 대상보다 평범한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 있다. 가위, 메뉴판, 과일, 맥주병, 꽃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이미지가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디지털 시대와 대비된다.

스마트폰 속 이미지는 몇 초 만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SNS에서는 하나의 콘텐츠를 오래 바라보기보다 끊임없이 다음 화면으로 이동한다.

우고 리의 회화는 이와 반대로 관람객에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시간을 요구한다. 평범한 꽃 한 송이, 식탁 위의 빈 병,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그림자가 어느 순간 하나의 기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Q. 관람객들이 어떤 경험을 하기를 바라시나요?
A.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아름다움과 시(詩)입니다. 일상의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을 담은 만큼 관람객들이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며 자신만의 해석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작품을 보며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Q. 색과 형태, 공간 중 어떤 것이 중요한가요?
A. 색과 형태, 공간 모두 중요합니다. 어느 하나를 앞세우기보다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더하는 문장이나 단어는 작품의 일부이자 그림에 작은 이야기를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Q. 비선재갤러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A. 2023년 파리 개인전 당시 비선재갤러리 대표님 내외분이 우연히 전시장을 찾으셨습니다. 문이 닫혀 있었는데도 작품을 살펴보셨고, 이후 연락을 주셔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2024년 한국 전시 이후 계속 만남을 이어오면서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Q. 지난 2년 사이 가장 큰 개인적 변화는?
A.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전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이고 싶으신가요?
A. 앞으로는 제 삶의 실제 순간을 담은 보다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의〈해변으로 가는 길(On the Way to the Beach)〉이 그 출발점입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습니다.

Q.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A. 주변의 사물을 천천히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와인병 옆의 담배 한 개비나 꽃 한 송이처럼 평범한 풍경에서도 아름다움과 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인 만큼, 이번 전시가 잠시 속도를 늦추고 ‘진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고 리의 《영원한 일시성》은 정물화를 통해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라짐을 이야기하는 전시다. 꽃은 시들고 과일은 변하며 맥주병은 비워진다. 햇빛은 식탁 위를 지나가고 그림자는 사라진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바로 그 일시성 속에서 오히려 영원에 가까운 순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붓과 색, 글자와 시간 기록을 통해 그 순간을 캔버스 위에 남긴다.

이번 전시는 10월 9일까지 갤러리 비선재에서 열리며 사전 예약제(네이버 예약)로 운영된다.

한국경제TV  사업2부  정성식  PD

 ssjeong@hankyung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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