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설비투자 혜택을 받아온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외면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AI 클라우드 신생 기업들의 자본 조달에 대한 경계감 속에 시중 국채금리 하락에도 조달 금리는 오히려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메타 공시에서 드러난 장부 밖 부채..8개 기업 합산 3.6조 달러
기술주 폭락의 직접적인 진원지는 대형 기술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실적을 공개한 메타 플랫폼이다.
메타 경영진은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별도의 위임장 공시에서 올가을부터 향후 수년간 수천억달러 규모의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메타측은 이러한 자금을 모두 회사채로 조달할 경우 회사의 높은 신용등급을 흔들 수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메타 이사회는 알파벳과 스페이스X는 물론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오픈AI와 앤스로픽의 대규모 자금 모집이 한꺼번에 겹치며 자금 조달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에 몸사리는 것은 빅테크들 뿐만이 아니다.
전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내년 상장을 앞두고 300억 달러 조달을 추진해온 오픈AI는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경색 우려 속에 목표 기업가치를 당초 1조 4천억 달러에서 1조 2,500억 달러로 낮춰 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다.
빅테크의 공식 재무제표에서 제외해 왔던 ‘장부 외 부채’, 즉 그림자 부채도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메타가 올 3분기에 추가한 미개시 데이터센터 리스 등 장부 외 약정만 760억 달러로 이러한 숨겨진 부채를 총 7470억 달러로 늘렸다.
엔비디아 등 나머지 대형 기술기업 8개사의 장부 외 약정 총액은 무려 3조 59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5천조 원 상당에 달한다.
그동안 빅테크들은 기존 현금흐름으로 감당하기 힘든 투자 규모로 인한 신용등급 강등을 피하기 위해 블루아울과 블랙스톤 등 사모대출 운용사를 낀 특수목적기구(SPV)를 통해 데이터센터를 지어왔다.
이러한 SPV는 사모대출 펀드가 지분 80%, 빅테크 자본은 20%만 출자하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장부상 빚은 사모펀드와 연기금 채권에 전가하면서, 장기 리스료와 잔존가치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위험을 잘라내는 방식이다.

◆ 젠슨 황이 말한 "자본의 희소성"…작동 멈춘 레버리지
재무제표에서 감춰온 AI 인프라 투자 구조는 산업의 끝단에 자리한 네오클라우드 기업들과 사모대출 펀드의 자금이 역류하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행사에서 미 경제방송 CNBC와 인터뷰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코어위브를 둘러싼 부실 우려에 대해 “네오클라우드에 대한 수요는 차트를 뚫고 나갈 정도로 폭발적”이라며 사업 모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옹호했다.
다만 그는 “중간 과정에서 부족한 것은 그 성장을 뒷받침할 운전자본”이라며 “AI 전 분야에서 수요가 너무 많다 보니 가용한 자본보다 자본에 대한 수요가 훨씬 커 자본의 희소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어위브의 핵심 대주인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 사장 역시 같은 날 블룸버그TV에 출연해 “AI 수요는 포물선을 그리듯 폭발하고 있으며 네오클라우드는 결국 자본 조달처를 찾아낼 것”이라고 거들었다.
두 수장은 이를 폭발적 성장에 따른 일시적 자금 병목으로 설명했지만, 자본시장은 여전히 위기 해소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AI 기업들이 요구하는 천문학적인 자본 수요가 시중의 가용 유동성을 초과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부터 조달 금리가 치솟고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신용 경색으로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은 그동안 별도의 반도체 담보 기구를 세워 엔비디아 반도체와 빅테크 계약서를 맡기고 사모펀드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뒤 이를 바탕으로 첨단 GPU를 쌓아올려왔다.
하지만 빅테크가 지급하던 클라우드 이용료보다 임대료와 고금리 이자로 소진하는 자본이 커지고, 자금줄 역할을 하던 블루아울 등에서 투자자 이탈이 이어진 뒤 신규 자금 유입마저 끊겼다.
◆ 국채금리 내려도 회사채 ‘발작’…닷컴버블 판박이
자회사 담보 대출에 의존해 몸집을 불려온 자본 조달 구조의 허점으로 인해 코어위브의 무담보 회사채에 대한 위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박지빈 LS증권 연구원의 크레딧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코어위브의 차입금은 지난 6월말 기준 355억 5천만 달러로 이 가운데 지연인출 담보대출(DDTL)이 136억 4천만 달러로 약 38.4%, 회사채와 전환사채는 166억 2천만 달러로 약 46.7%를 차지했다.
문제는 매출을 일으키더라도 프로젝트 운영과 원리금 상환에 쓰이면서 단기간에 빚을 덜어내기 어려운 대출 구조에 있다.
박 연구원은 "코어위브가 단기간 부도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설비가동과 고객 대금 수령 등이 미뤄지고, 차환 여력이 줄면 만기가 도래하는 무담보채의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문제는 이달 미국 국채 금리 하락에도 AI 인프라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를 밀어올리는 배경이 된다.
지난 8일부터 20일 사이 미 국채 5년물 금리는 6bp(1bp=0.01%p) 하락했지만, 코어위브 무담보 회사채의 가산 금리는 최고 274bp 뛰는 등 취약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 채찍 끝단에 선 한국 반도체…메모리 외면한 외국인
자본 조달 시장의 냉각과 신용 시장의 경색 조짐은 공급망 끝단에 선 한국 반도체 대표 기업들의 기업 가치에 직접적 타격을 주고 있다.
반도체 고객사들이 심각한 유동성 확보 전쟁에 내몰리면서 향후 서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문이 연기되거나 단가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는 공포가 반도체 투매로 직결되는 양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베를린 GTC에서 메모리 공급 과잉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틀어진 시장 심리를 되살리지 못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신한투자증권과 신영증권은 한국 증시가 전체 시가총액의 52%를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로, 빅테크 고객사들의 자금난이 부각될 때마다 메모리의 초과이익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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