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베네수엘라 인기 스포츠 야구 관중도 '반 토막'

입력 2017-01-11 10:00  

경제위기 베네수엘라 인기 스포츠 야구 관중도 '반 토막'

"경제난에 치안 불안으로 밤에 야구장 오기 무서워"

(카라카스<베네수엘라>=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축구 인기가 압도적인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는 야구에 열광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겨울 리그는 이듬해 봄부터 가을까지 펼쳐질 미국 메이저리그로 가기 위한 관문역할도 해 '무명' 선수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최선을 다하며 그만큼 관중들의 열기도 뜨겁다.

그러나 장기 집권자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정치 혼란과 경제 위기 속에 야구 열기도 시들해졌다.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2016-2017 프로야구 시즌 카라카스 레오네스와 마르가리타 브라보스 간 경기가 열린 수도 카라카스 소재 베네수엘라중앙대학(UCV) 운동장을 찾아갔다.

경기 시작 30여 분 전인데도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사람은 20명이 채 안 됐으나 진을 치고 있던 암표상들이 기자를 반겼다.






매표소 바로 앞에서 버젓이 표를 흔들던 한 암표상은 "매표소 직원들은 오는 손님에게 표만 팔뿐이고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웃었다.

평소 주로 매표소에 줄 서기 싫은 사람들에게 되팔아 차액을 챙겨왔다고 밝힌 그는 "오히려 요즘은 경제가 안 좋아 매표소에서 3천 볼리바르짜리 입장권 1장을 사면 1장을 더 얹어준다"고 말했다. 3천 볼리바르는 1월 9일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1달러(약 1천203원)가 조금 안 되는 돈이다.

그는 그러나 "경제가 좋을 땐 인기 경기는 50장, 평범한 경기는 30장 정도 암표를 팔았는데 오늘은 한 장도 못 팔았다"며 한숨지었다.






이날 경기장 외야석엔 관중이 거의 없었다. 다양한 색깔로 칠해진 내야석 좌석들과 달리 시멘트와 회색으로 뒤덮인 외야석이 더욱 썰렁해 보였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 내야석에서만 과자나 맥주를 들고 다니며 파는 상인들이 더러 눈에 띄었으며, 기자석과 경기를 생중계하는 방송사 부스들만 분주했다.






기자석에 있던 현지 스포츠 전문지 '엘 아보나도'의 이브라임 카르모나 기자는 "야구는 베네수엘라 문화에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람들이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이 어려워도 야구 관람을 일종의 탈출구로 여겨 왔기에 예전 같으면 온 식구가 경기장에 와서 맥주를 마시고 간식을 사 먹으며 야구를 즐기곤 했는데 지금은 경제난이 심해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카라카스가 홈에서 강팀과 붙을 때면 2만1천석 좌석이 모두 차고 계단 통로에까지 관중이 들어찼으나 지금은 인기팀이 방문해도 7천∼8천 명, 비인기 팀과의 경기엔 3천∼4천 명 정도 온다고 덧붙였다.




야구 인기는 높아도 선수들의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 카르모나 기자는 "베네수엘라 리그엔 미국에 진출하려는 선수와 미국에서 뛰다 컨디션 점검 목적으로 오는 선수 등이 뒤섞여 있어서 연봉이 천차만별"이라면서 "베네수엘라 출신 중간급 선수는 시즌 동안 한 달에 약 25만 볼리바르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겨울 리그가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약 4개월간 이어지므로 보통 선수는 한 시즌에 100만 볼리바르를 받는 셈이다. 이는 298달러(약 35만8천원)에 불과하다.

카르모나 기자는 "봄∼가을에 외국 프로야구에서 뛰다가 겨울에 베네수엘라로 오는 선수들의 경우 시즌 중 월급이 2천 달러(약 240만 원)로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예상 인플레이션율은 1천600%에 달할 정도로 경제가 혼란스럽다. 불경기와 치안 악화는 야구팬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이날 야구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런 '경제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여가를 즐기러 온 열혈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카스팀 3루수 헨리 로드리게스의 가족이라는 한 야구팬은 "가족이 일하는 곳이니 더욱 야구장에자주 온다"면서 "하지만 지금 나라 상황 때문에 입장객이 절반 아래로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카라카스팀 선수로 뛰는 친구들이 많다는 관중 파울라 파라(33) 씨는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워도 야구를 보러 오곤 했는데 치안 불안으로 경기 끝나고 밤에 다니기가 무서워 관중이 더욱 줄어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 7시 관중과 선수들이 기립한 가운데 베네수엘라 국가 연주가 끝나자 경기가 시작했다.

카라카스는 1회 말 무사 1, 3루에서 3번 타자 헨리 로드리게스의 우익수 희생 플라이로 선취 득점해 홈팀 관중들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 팀이 3회초 2대-1로 역전하고 5회 초 3대 1로 달아난 뒤 점수를 끝까지 지키며 승리하자 관중석은 베네수엘라 상황만큼이나 침울해졌다.

j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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