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에는 오지 말거라" 사상 최악 AI에 농가는 '눈물'

입력 2017-01-25 06:11   수정 2017-01-25 07:38

"올 설에는 오지 말거라" 사상 최악 AI에 농가는 '눈물'

자식 같은 닭·오리 살처분한 농장주들…"역귀성 고민"

"다시 확산할라"…AI 진정국면 접어들었지만 '노심초사'

(전국종합=연합뉴스) "올해 설 명절에는 애들 내려오지 말라고 했어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휩쓸고 간 전국의 가금류 농가는 여전히 시름 가득하다.





자식과도 같은 닭과 오리를 살처분 하면서 느낀 심적 고통이 워낙 컸던데다, 진정국면에 접어든 AI가 다시 확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설 명절조차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할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AI 피해 농가들은 가족·친지들과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덕담하던 시골 마을의 설 풍경은 올해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 평택시 청북읍에서 육용종계 농장을 운영하는 A(70)씨는 최근 두 아들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올해 설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전했다.

6살, 8살, 10살짜리 세 손자 손녀가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해 12월 초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아 닭 2만 마리를 농장 안과 밖에 매몰한 터라 차마 가족들을 부를 수 없었다고한다.

매몰지 인근에 오염원이 잔존할 가능성이 커서 가족들이 방문했다가는 자칫 AI 전파로 이어질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다.

A씨는 "27년간 양계를 하면서 그 많은 닭을 살처분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식과도 같은 닭을 매몰할 때의 심경은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AI 바이러스가 밖으로 퍼질까 걱정돼 올해 설에는 가족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며 "두 아들과 세 손자 손녀가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가금류 농장주들은AI 발생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포천시 영북면 산란계 농장주 B(67)씨는 역귀성을 고려하고 있다.

농장 주변 공터에 170만 마리를 살처분해서 자녀들이 고향을 찾는 것이 달갑지 않고, 온갖 약품 냄새와 악취도 걱정이다.

B씨는 "마을 입구에 매몰지가 있어 집에 오는 자녀들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고, 모여도 한숨만 나올 것 같다"며 "아예 이쪽에서 큰아들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 많은 가금류 농가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자녀들의 귀성을 만류하고 있다.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마을 주민들은 올해 설 명절에 외지 가족들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주민 C(49)씨는 "AI 여파로 기르던 닭 15만 마리 전체를 땅에 묻은 악몽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며 "친척들이 보고 싶지만, AI 전파 등의 우려가 있어 이번 명절에는 고향에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경남·부산·울산지역 최대 산란계 집산지인 경남 양산 지역은 지난해 12월 말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뒤 추가 신고가 없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어서 설 명절을 건너뛰기로 한 이들도 더러 있다.




산란계 농장주 D(60)씨는 "서울에 있는 딸 아이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미리 연락했다"며 "명절에 가족을 볼 수 없게 돼 섭섭한 마음이지만,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자식처럼 돌봐야 하는 닭을 생각하면 할 수 없다"고 애타는 속내를 드러냈다.

가름류 농가가 밀집한 충북 진천군과 음성군 농촌 마을은 외부인은 물론 인근 주민끼리의 왕래도 끊겼다.

오리를 사육하는 E(60)씨는 "두 달이 훌쩍 넘도록 방역을 해도 끝이 안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설을 준비할 수 있겠느냐"며 "언제까지 겨울철마다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텅 빈 축사만 남아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진 업계 관계자들도 설 명절이 쓸쓸하다.

경기지역 모 달걀 유통 업체의 산란계 농장 총책임자 F(48)씨는 지난해 12월 초 60만 마리가 넘는 닭을 보름에 걸쳐 살처분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다.

더욱이 하루 40만 개 가량의 달걀을 생산해 설 명절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예년과는 반대로 올해는 일거리가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F씨는 "직원 중 외국인 근로자들은 무급 장기휴가를 가고, 한국인 근로자들은 연차를 최대한 소진하면서 연초를 나야 한다"며 "워낙 바빠 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일거리가 없어 걱정하는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AI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다음 달 1일까지 설 명절 AI 특별방역 대책을 추진한다.

우선 지난 23일을 시작으로 26일까지 지자체별로 가금류 농장과 축산 시설의 방역 실태를 점검한다. 또 설 전후인 25일과 다음 달 1일에는 군 제독 차량과 농협 공동방제단을 활용해 강도 높은 일제 소독을 할 방침이다.





AI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설 명절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늘어남에 따라 AI 확산이 우려돼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AI 피해 농가 및 설 성수기를 맞은 도축장 등을 중심으로 면밀한 점검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AI 여파로 인해 살처분한 가금류는 24일 기준 3천260만 마리다.

이 가운데 닭의 피해가 2천735만 수로 가장 심각하다. 이는 전체 사육 규모의 17.6% 수준이다.

(김동철, 최병길, 최재훈, 변우열, 강영훈 기자)

ky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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