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일 vs 침략일…'호주의 날' 기념행사 취소로 '홍역'

입력 2017-01-26 11:33  

건국일 vs 침략일…'호주의 날' 기념행사 취소로 '홍역'

소도시, 사회통합 이유 행사 미뤄…우파 단체·정치인 등 반발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229년 전 영국함대가 호주 대륙에 첫발을 디딘 날은 '건국일'일까 '침략일'일까.

인구 3만명의 호주 작은 도시가 '호주의 날'(Australia Day·건국기념일)인 26일에 통상적으로 실시해오던 불꽃놀이 등 축하행사를 취소해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26일 호주 ABC 방송 등에 따르면 퍼스에서 남서쪽으로 20㎞ 떨어진 항구도시 프리맨틀 시 당국은 올해 '호주의 날' 축하행사를 이틀 뒤로 미뤄 치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호주인에게는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이날을 달리 인식하는 원주민들의 고통도 생각해 더 사회 통합적인 행사를 치러보자는 취지였다.

브래드 페티트 시장은 "호주가 1788년에 시작되지 않았고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26일은 단지 축하의 날이 아니라 많은 이에게 힘들고 어긋난 감정을 가진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점차 우경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찬반 양쪽으로 갈려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를 되찾자'(Reclaim Australia) 등 극우성향 단체들은 "호주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26일 항의 시위를 공언, 시 당국을 긴장하게 했다. 이 단체의 시위가 종종 폭력 사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역 상공인단체는 한 해의 최대 대목을 잃을까 우려해 자체적으로 5만 호주달러(약 4천500만원)를 모아 26일에 불꽃놀이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극우파 유력 정치인인 폴린 핸슨 연방 상원의원도 시 당국의 결정을 비판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핸슨 의원은 "있는 그대로 '호주의 날'을 받아들여야지, 축하행사를 미루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연방정부도 애초 예정대로 축하행사를 치르지 않으면 시민권 수여식 개최권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그러나 페티트 시장은 원주민의 권리문제가 당리당략의 장으로 끌려들어 가서는 안 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원주민단체 측도 "이날을 축하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큰 고통을 치른 날로 기억할 뿐"이라고 환영하고 있다고 호주 ABC 방송은 전했다.

그러나 일부 원주민은 분란만 초래하고 있다는 뜻도 밝혔다.

호주 대륙에는 약 5만 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주 땅을 차지하기 시작한 백인들은 1973년에야 백호주의를 공식 폐기할 정도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면서 원주민을 차별해 왔다.

현재 2천400만명의 호주 전체 인구 중 원주민은 약 70만명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경제적·사회적으로 밑바닥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상에 원주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 문제가 오래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갈등이 오히려 원주민 문제에 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