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외환(外患)이 왔다"

입력 2017-03-13 08:01  

[연합이매진]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외환(外患)이 왔다"

史學者 한명기 명지대 교수가 전하는 역사의 엄혹한 교훈들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소녀상 설치에 따른 일본의 반발과 독도 영유권 주장, 북한의 도발 위협 고조 등 대한민국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탄핵 사태와 맞물린 리더십 공백과 내부 분열은 국가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명기(56)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작금의 위기 상황이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쟁 사학자인 그는 조선 시대에 발발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직면했던 국제관계에 이미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책 찾기는 역사와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을 들어본다.


-- 역사적 사건 중에서 유독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전쟁은 특수한 위기 상황입니다. 평화롭고 안정적일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특수한 모습이 전쟁 기간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죠. 생존이 문제가 되면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드러나서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돼요. 임진왜란 때 보면 멀쩡한 조선 사람을 죽인 후 일본인 시신으로 둔갑시켜 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죠. 전쟁 때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또 우리나라처럼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어있는 나라는 주변에서 힘의 교체나 변화가 생기면 의지와 무관하게 휘말리죠. 역사를 보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거나 주도하지 못하고 외세의 압력 때문에 고난에 빠진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런 고난에 빠지지 않으려면 역시 과거를 돌아보는 게 중요해요.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주제는 역시 전쟁이죠.


-- 조선 시대 가장 큰 전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입니다. 우리가 두 전쟁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큰 전쟁을 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전쟁이 있는데 공통점을 보면 우리나라가 주변 국가에 크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 의지와는 관계없이 외환(外患)이 왔죠.

16세기 중후반에 왜(倭)의 힘이 세졌어요. 조총이 유입되고 은(銀) 생산이 폭증하죠. 또 내전을 오래 치르면서 군사력이 무척 강해졌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정도 군사력과 역량이면 명나라와 붙어도 이긴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명나라를 치러 가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조선의 협조였어요. 왜는 일본의 편에 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내몰렸죠. 임진왜란은 앞장서라는 왜의 요구를 조선의 거부로 발발했어요. 왜가 명나라를 치겠다고 표방했는데 전쟁은 조선에서 벌어진 거죠.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싹이 텄어요. 명나라 입장에서는 왜의 조선 침략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었어요. 한반도가 넘어가면 왜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명은 전략적인 필요 때문에 참전했지만, 겉으로는 조선을 돕기 위해 참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죠. 명의 참전이 도움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전쟁의 주도권이 명과 왜로 넘어갔다는 거예요. 종전 협상에서도 조선은 배제됩니다.

전쟁 이후 조선 지배층은 명나라 덕분에 살아났다고 생각하며 존숭의식을 갖게 됩니다. 명 중심의 질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죠. 명이 최고 강대국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면 맞는 판단이지만 그렇지 못하죠. 왜란이 끝나고 여진족의 세력이 커지고 후금이 탄생하죠.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서북쪽에서 위협이 다가왔어요. 이런 상황에서 명은 왜란 때 도왔으니 조선이 여진족을 공격하거나 견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죠. 조선은 이제 명과 여진족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두 전쟁의 공통점은 강대국들의 힘이 교체되는 시기에 한반도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는 거예요.






--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금 우리의 상황이 당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사드 배치 문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은 중국, 미국과 모두 잘 지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어요. 상대적인 약소국이 복수의 강대국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모두와 잘 지내는 거죠. 그런데 언젠가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게 돼요. 강대국들이 대결에 나서면 끼어있는 나라는 결국 어느 시기에 이르러 양쪽 모두와 잘 지낼 수가 절대 없죠. 이게 한반도에서는 역사적으로 항상 문제였어요. 사드 배치의 주체는 미국인데 중국이 미국에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죠. 우리나라가 굉장히 골치 아픈 상황에 부닥쳐 있습니다.



-- 한국이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

▲ 2015년 한국과 중국 정상이 천안문 망루에 함께 올랐잖아요. 분위기가 최상이었죠. 그런데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면서 양국 관계는 갑자기 최악이 됐어요. 지금 그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다음에 누가 집권한다 해도 부담이 크고 외교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겁니다. 만약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는 또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 같아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일정한 법칙이 있어요. 일본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중국과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좋습니다. 그 역도 성립합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하죠. 상대적 약소국이 주변 강대국을 모두 적으로 돌리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을 보면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목을 조르는 형국이에요. 지금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 최악인 상황에서 양국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죠. 얼마 전까지는 미국이 흐름을 조율하거나 상황을 정리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죠. 트럼프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를 모르니까 눈치만 보고 있는 겁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현재와 비교해 보면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의 현실이 과거에 겪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중국은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이 준전시 체제에 해당할 정도의 갈등 상황에 치닫게 되면 최악에는 국지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그러면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예요. 최악에는 주한미군을 빼서 남중국해에 전개할 수도 있죠. 그럴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렇게는 절대 못 한다"며 깡다구를 발휘할 수가 있을까요.

중국은 지금 사드 배치 문제로 감정이 이미 많이 상했는데 과연 우리의 내부 능력이나 판세를 봤을 때 그것을 넘어설 만큼의 준비나 자세, 역량을 현실적으로 갖추고 있는가를 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입니다. 정치인이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과연 있는지 의문입니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그런 문제까지 생각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서 내부 결속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국민이 분열된 상황이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 사람들은 임진왜란의 최대 책임을 선조한테 돌리는데 사실 전쟁 초반에 조선이 허망하게 무너진 결정적인 원인은 명종 대에 있습니다. 명종 재위 20여 년간 정치가 엉망이었습니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는데 남동생인 윤원형을 끌어들여 권력을 말아먹었죠. 특정인에게 권력이 넘어가면 부정과 비리가 난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뇌물이나 청탁을 받고 지방 수령을 파견하고, 나라의 재산을 사유화해 백성을 수탈했어요. 윤원형 일당은 예성강과 임진강 유역 갈대밭을 사유화해 통행세를 받았어요. 강변의 갈대는 백성이 그릇이나 갓을 만들어 파는 생활자원이었죠. 먹고 살기 힘들어진 거죠. 그래서 일어난 것이 임꺽정의 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기에 공교롭게도 일본과 동중국해 부근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어요. 대표적으로 일본에 조총이 유입되고 전국시대가 통일되는 조짐을 보였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을 정복하려는 생각도 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조선 내부의 리더십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도 대응이 가능할까 싶은데 내부에 문제가 많으니 신경 쓸 수가 없는 거죠.

역사에는 데자뷔(기시감)라는 게 있어요.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면 미국은 불투명하고 일본과 중국은 목을 조르고 있죠. 사실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권력이 부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고려 말을 보면 권문세족에게 토지 소유가 집중됐어요. 백성은 송곳 하나 꽂을 만한 땅이 없다고 할 정도였죠. 조선 건국자들은 새 국가는 부정과 부패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죠.

그런데 명종 대에 이르러 건국 초기에 내세웠던 공공성이 상당히 퇴보했죠. 즉 개혁이 절실한 시기에 이른 거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역시 지도자의 책임이 상당히 크죠. 선조는 명종 대의 부정이나 비리를 쇄신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어요. 권력자가 쇄신하지 않고 또한 권력이 적절하게 통제되거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비리나 부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도 그런 경우죠. 지난 총선에서 그래도 야당이 의석을 많이 얻었으니까 문제가 표면에 드러났지 만약 여당이 압승했다면 문제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죠.



--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 공(公)과 사(私)의 영역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공직에 뜻을 둔 사람이 공직을 통해 사적 이익까지 추구하려 생각한다면 아예 공직에 나가지 말아야 해요. 이런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야겠죠.

"정치라는 게 항상 털면 먼지가 나오는 것 아니냐", "너는 깨끗하냐"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생각이 다르면 서슴없이 '종북좌빨'이니 '보수꼴통'이니 하면서 낙인을 찍고 있어요. 남북이 분단되고 대한민국 내부가 분열된 것의 상당 부분은 정치인에게 책임이 있어요. 또 정치인이 그렇게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국민이 용인해왔기 때문이에요.

공사 구분 문제나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훈련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특히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런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해야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는 거죠.



-- 흔히 역사 드라마를 즐겨보지만, 역사책을 읽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사에 접근하는 쉬운 방법은 뭘까요.

▲ 우리나라는 사회과학 분야 인력이 많지 않습니다. 미국을 보면 역사책 중에서 전쟁사 분야만도 성인이 읽을 만한 대중 서적이 아주 많아요. 우리는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순신 장군만 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연구한 평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죠. 이순신 평전이 객관성을 갖고 사람들에게 그럴듯하다는 인상을 주려면 일본사, 일본 수군사, 일본 전쟁사 등 이런 것에 대해 박학한 사람이 동아시아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에서 써야 하죠. 역사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다른 인물에 대한 평전도 뚜렷하게 읽을 만한 것이 별로 없어요.

지금 인문학 열풍이 불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과들이 통폐합되거나 죽어가고 있어요. 인문학의 싹이라는 게 결국 대학인데 실제 대학에서는 돈인 안 된다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독서를 통한 재충전이나 재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문학은 유행처럼 반짝하다 끝날 수도 있어요.



-- 역사를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올바른 역사관이 뭐냐는 것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역사관이 무엇이냐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데 여전히 중세적인 관념에 갇혀있다거나,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 필요에 따라 과거를 창조하는 낭만 사관, 교과서에 담긴 것이 모두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거죠. 결국 동일한 사실에 대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풍토가 중요합니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회를 어떻게 보고, 나라를 어떤 식으로 인식할 것인가와 결부돼 있어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게 하는 풍토를 마련해야 토론하고 소통할 수 있고,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거죠.

사실을 사실로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지 사실을 자기의 이해관계나 정치성향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으면 안 되겠죠. 역시 어릴 때부터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뒤집어 얘기하면 교육은 무너지는 것도 서서히 진행됩니다. 제대로 된 민주시민을 기르고, 사람들이 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사회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dklim@yna.co.kr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3월호 [인문학 이야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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