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민 도우미' 고지운 변호사 "억울한 불법체류 막아야"

입력 2017-03-03 09:39  

<인터뷰> '이주민 도우미' 고지운 변호사 "억울한 불법체류 막아야"

3년전 이주민지원센터 '감사와 동행' 혼자 설립…변호사 3명으로 늘어

"농축산업 근로환경 개선 절실"…"외국인보호소는 구금시설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두 차례나 공익센터 간판을 내리려고 했어요. 그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나타나고, 또 저희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눈길을 외면할 수 없어 여기까지 왔죠. 이제는 계속 끌고 나갈 자신감이 붙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사명감도 느껴 앞만 보고 갈 겁니다."

오는 18일 창립 3주년을 맞는 이주민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약칭 감동)의 고지운(39) 대표변호사는 가냘픈 몸매와 선한 눈매의 소유자답지 않게 다부진 포부와 각오를 쏟아냈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차분한 말투로 지난 3년을 회고하며 감동이 해온 일을 설명하다가도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이주민들의 사례를 들어 제도 개선을 촉구할 때는 저절로 어조가 높아졌다.

"지난 1월 말 법무부 통계를 보면 주한 외국인 201만3천779명 가운데 미등록체류(불법체류) 외국인이 21만1천320명으로 10.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죠. 저도 이 분야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남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습니다. 범법자나 탈법자로 말이죠.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니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고용주와 분쟁을 벌이다가 체류기한을 넘긴 사례가 대부분이더군요."

심지어는 산재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된 뒤 고용주에게 속아 근로계약 해지 합의서에 잘못 서명하는 바람에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사람도 있고, 고용주가 휴가를 가라고 해놓고 사업장 이탈로 신고해 불법체류자로 만드는 일도 있다고 한다. 고 변호사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정해진 기간 안에 목표로 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품고 있지만 고용주나 당국의 귀책사유 때문에 억울하게 법률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고의로 법을 어기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처음부터 밀항해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요. 저희도 그런 사람에게는 법률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서나 그런 사람은 있게 마련인데, 전체 외국인의 10.5%나 되는 미등록체류자를 모두 악의적인 범법자로 취급하는 건 부당한 일입니다. 왜 미등록체류자가 생겨나는지 원인을 따져보고 예방하거나 구제하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죠. 적어도 법률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고용허가제 체류기한(최대 4년 10개월)의 예외를 인정해 미등록체류자 양산을 막아야 합니다."


고 변호사는 처음부터 법조인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법학 공부가 좋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가 다른 친구들처럼 사법고시에 도전했으나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법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던 중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겨 이화여대 로스쿨에 1기생으로 들어갔고 2012년 3월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원래 변호사가 어릴 적 꿈이 아니었듯이, 당초 목표도 이주민 전문 공익변호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만 5년을 맞은 변호사 생활을 돌아보면 자신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의료법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었죠. 자랄 때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가 많았거든요.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다른 동기생들과 함께 로펌에서 실무 수습으로 일했습니다. 건설 분야 소송에 참여해 실무를 익히고 있을 때 그곳에서 일하시는 윤영환 변호사께서 이주민 봉사단체 '친구'를 만들어 동참을 제안했어요. 2012년 6월 서울 혜화동의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에서 무료 법률상담에 나섰는데, 그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죠."

6개월 수습을 마치고 9월부터는 '친구'에서 상근하다가 그 단체가 활동 중단 위기에 놓이자 직접 공익단체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공익변호사에게 업무 공간을 지원하는 사업을 알게 돼 2014년 3월 변호사교육문화관에 둥지를 틀고 감동을 창립했다. 그러나 소송 수임료나 성공 보수를 받을 수 없는 공익변호사로서 혼자 사무실을 꾸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용도 문제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어렵사리 출범시킨 감동을 1년도 안 돼 접으려고 하던 2014년 12월, 연구원 한 명이 합류해 다시 힘을 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사랑샘재단과 법무법인 공감이 200만 원과 100만 원씩 매달 지원해주는 돈도 큰 보탬이 됐다.

1년 뒤 연구원이 그만두는 바람에 다시 기운이 빠져 폐업을 검토했다가 지난해 4월 우윤지 실무관에 이어 한국여성변호사협회에서 파견된 이현서 변호사와 뉴질랜드 동포 1.5세 김진 변호사가 5월과 6월 차례로 합류해 탄탄한 진용을 갖추게 됐다. 이제는 후원자도 조금씩 늘고 있고, 연구보고서 공모에 뽑혀 연구용역비를 타내기도 해 존폐의 기로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주민 지원단체는 많아도 상근 변호사를 두고 있는 곳은 드뭅니다. 우리처럼 전문 인력이 여러 명 되는 공익법인은 국내에서 처음이죠. 호주·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을 가진 김 변호사는 이주아동 문제와 함께 제도 개선이나 법률 연구를 전담하고, 저와 이 변호사는 소송 업무와 이주노동자·이주여성 분야를 나눠 맡고 있죠.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우 실무관은 중국어를 전공해 통·번역 일도 합니다."


대한변협 이주외국인난민인권소위원회 간사이기도 한 고 변호사가 현재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현안은 농축산업 분야 이주노동들의 인권 문제다. 계절적 요인 등을 감안해 근로기준법에 예외 규정을 둔 것이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장이 외딴 곳에 있어 감시의 눈길이 덜 미치고 이주노동자들이 조력을 받기 힘든 것도 어려움을 더한다.

이와 함께 당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시정을 촉구하는 사안은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시설이다. 이주노동자들을 면담하러 보호소를 방문하면 말은 보호소인데 시설이나 운영 행태는 구금 시설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저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제가 자리를 잡아야 법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과 주위 사람들이 이주민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어요. 어떨 때 보면 판사들이나 고용노동부 담당자들마저 이주민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오래 버티고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앞으로는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나 입법 활동 등을 통한 제도 개선에도 적극 나설 겁니다. 그러려면 연구 기능을 갖춰야겠죠. 사업주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펼치고, 지방센터를 만들어 지역을 돌며 이동 법률상담도 하려고 합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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