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왕래 잦은데 굳이 왜 짓나"…멕시코, 트럼프 장벽에 '공분'

입력 2017-03-04 09:15  

[르포]"왕래 잦은데 굳이 왜 짓나"…멕시코, 트럼프 장벽에 '공분'

국경도시 티후아나 시민 실효성 의구심…"우리는 트럼프 말대로 나쁜사람 아냐" 불만도

美 불체자 단속·추방 강화에 이민자 쉼터 5곳서 32곳으로 늘어…"추방자 가족 고통 커"




(티후아나=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트럼프 쇼크', '악몽', '흔들릴 시간'….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멕시코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한 제목들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멕시코 북서부 바하칼리포르니아노르테주(州)의 국경도시 티후아나. 멕시코인들의 충격과 우려는 트럼프의 지난 1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의 여파는 티후아나의 관문인 AL로드리게스 국제공항에서도 감지됐다. 입국 게이트를 지키는 멕시코 이민청 관계자들은 입국 서류와 신분증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불법 이민 의심자들을 가려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 이민청 관계자는 "티후아나가 미국 샌디에이고와 접한 국경도시라 예전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이민이나 출입국 관련 서류를 면밀히 점검해왔다"면서도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과 공존하는 멕시코 도시로 불리는 티후아나에서는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일반 시민의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는 높았다.

미국과의 국경 울타리 바로 옆 마을인 콜로니아 리베르닷에서 40년간 살았다는 구스타보 로하스(81) 씨는 "지금도 매일 많은 사람이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고 있는데 굳이 왜 국경장벽을 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보기도 안 좋고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티후아나와 샌디에이고 간의 연간 입출국 인원은 9천만 명에 달한다.

티후아나에서 가장 오래된 콜로니아 리베르닷은 미국과의 국경 울타리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는 미국에서 쫓겨난 불법 체류자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티후아나 시내에는 멕시코에서 세운 울타리와 미국에서 세운 철제 울타리가 약 100m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현재 멕시코 정부를 비롯한 산하기관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에는 직접적인 발언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졌지만, 하루 7만 명이 도보로 샌디에이고와 넘나드는 국경검문소를 오가는 시민들은 불만과 불안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권도 가지고 있다는 밝힌 카리나라 미레스(23·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가 없는 일에 쓸데없이 돈을 쓰려고 한다"면서 "많은 멕시코인이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등 미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멕시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욕을 용납할 수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멕시코재외동포원(IME)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는 약 58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시민권자로 샌디에이고에 있는 고등학교에 등하교하기 위해 매일 국경검문소를 넘는 멕시코인 브란돈 타피아(17)는 "이미 물리적인 울타리가 있고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왜 불필요하게 장벽까지 세우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불법이민과 마약밀매를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약 12m 높이의 장벽을 설치하고 비용을 멕시코가 대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텍사스 남부를 따라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 미국-멕시코 국경은 총 길이만 약 3천145㎞에 달한다.

이 중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1천㎞ 구간에는 이미 펜스 등 여러 구조물이 설치돼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나머지 구간 중 자연적 경계를 제외한 1천610㎞ 구간에 시멘트 장벽을 설치할 계획을 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 국경지대에 5m 높이의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지만, 불법 이민자와 마약밀매업자가 언제든 맘만 먹으면 넘나들 수 있어 높이를 더 높인 장벽으로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장벽 건설에 드는 비용은 약 120억∼250억 달러(약 14조∼29조 원)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은 먼저 장벽을 건설한 뒤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들의 송금을 규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멕시코가 나중에 비용을 부담토록 한다는 구상이지만, 멕시코는 장벽 건설 비용을 한 푼도 낼 수 없다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비용 부담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과 설전을 주고받다가 정상회담이 취소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없이 국경장벽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6일 첫 공사 입찰 절차를 시작해 4월 중순께 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다. 주무부처인 미 국토안보부는 늦어도 9월까지는 공사에 착수, 2년 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불법 체류자 단속과 추방이 강화되면서 불똥이 멕시코로 튀고 있다.

최근 티후아나에 있는 이민자지원센터에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하다가 쫓겨난 멕시코인과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멕시코로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섣불리 미국으로 가지 못하는 중남미 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실제 티후아나에서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5곳이었던 이민자지원센터가 지금은 32곳으로 늘었다.




콜로니아 리베르닷 인근의 이민자 쉼터인 센트로 마드레 아순타 역시 트럼프 행정부 반이민 정책의 여파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1994년 문을 연 이곳의 정원이 43명이지만 현재 50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마드레 살로메 리미스 우이차파 수녀는 "지난주 미국서 살던 한 멕시코 여성이 이민 당국에 정기 신고를 하러 갔다가 추방돼 여기에 머물고 있다"면서 "국경장벽이 건설되면 또 다른 고통과 차별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리적인 장벽보다 더 큰 큰 장벽은 추방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라면서 "추방으로 이별과 단절을 경험하는 가족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penpia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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