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놓고 시위나선 어민들…"골재업계 이익만 대변"

입력 2017-03-15 09:05   수정 2017-03-15 15:04

그물 놓고 시위나선 어민들…"골재업계 이익만 대변"

바닷모래 채취연장 정부에 불신 팽배…4대강 준설토·대체재 활용 시급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전국의 어민들이 15일 그물을 내려놓고 바닷모래 채취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선 배경에는 정부가 어업피해를 외면하고 골재업계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강한 불신이 깔렸다.

바닷모래를 둘러싼 갈등은 정부가 2008년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서 동남쪽으로 70㎞ 떨어진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골재채취단지를 지정하고 채취를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어민들은 어업피해와 해양생태계 파괴를 우려했지만 정부는 국책사업인 부산신항 건설용으로만 채취하겠다고 약속했고 어민들은 이를 믿고 양보했다.

애초 2012년까지 총 3천520만㎥를 채취하기로 했지만 정부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채취 허가를 연장했고 지난해 말까지 채취량은 6천236만㎥로 늘렸다.

국책사업에만 사용하겠다던 약속도 뒤집어 민간용으로 확대됐다. 지금은 전체 채취량의 80~90%가 민간용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어민대책위는 주장했다.

어민들이 모래 채취로 인해 어업피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남해 모래 채취구역 어획량은 2011년 5천286t에서 이듬해 3천888t, 지난해에는 2천769t으로 줄었다. 5년 만에 반 토막 난 것이다.

지난해 연근해 어획량이 91만t에 그쳐 44년 만에 100만t이 무너지자 어민들의 어자원 고갈 위기감은 한층 높아졌다.

기후변화, 남획 등 다른 요인도 있지만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어장파괴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어민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바닷모래 채취가 해양생태계와 어업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파악된 게 없다.

대규모 사업으로 인한 영향을 제대로 살피려면 사전에 해당 수역의 환경과 수산자원, 어업·어종별 어획량 등을 미리 조사하고 나서 모래 채취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비교해야 하지만 정부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어민들의 거듭된 요구로 골재채취단지 관리자인 수자원공사가 전남대에 맡겨 작성한 어업피해보고서는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어업피해가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놓아 어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토부가 육상 골재 부족을 이유로 2020년 8월까지 바닷모래 채취를 한 차례 더 연장하려 하자 어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전면 중단'을 외치며 강하게 저항하고 나섰다.

바닷모래 채취가 일시중단되자 부산권 레미콘업계는 일시적으로 공장을 멈춰 건설공사가 일부 차질을 빚으면서 어민과 건설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정부는 당장 급한 골재난을 해소하고자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남해 바닷모래 650만㎥를 추가로 채취할 수 있게 허가했다.

어민들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며 강경 대응을 선언하고 국토부, 해수부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 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골재채취로 인한 어업피해가 확인되지 않았고 육상의 골재 부족을 고려하면 바닷모래 추가 채취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생태계 변화와 어업피해를 재조사하고 골재채취 제도 전반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민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정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업자원연구실장은 "바닷모래를 싼값에 대량 채취하는 골재업계는 이익을 보는 대신 어민들은 일방적인 피해만 보는 민주적이지 못한 구조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익을 누리는 쪽과 피해만 보는 상대방이 타협하려면 이익 수혜자가 피해자를 충분히 배려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또 "어민들이 믿고 기다릴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하며, 바닷모래 채취를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는 명확한 방침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4대 강 사업으로 발생한 엄청난 준설 모래가 방치되고 있는데도 국토부와 골재업계는 비용을 내세워 값싼 바닷모래만 고집하고 있다"며 "바다를 망가뜨리면 골재운반비보다 훨씬 큰 환경비용을 온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만큼 바닷모래 채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남해 바닷모래 채취업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채취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고, 대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정부가 채취 중단을 결정할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을 태세다.

골재업계도 바닷모래 채취 일시 중단으로 서해에서 부산권으로 수송하는 비용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물량마저 부족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바닷모래 채취를 중단하면 골재업계가 도산하는 등 또 다른 피해가 생긴다.

정부가 어민을 설득하고 건설업계의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양측의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게 뻔하다.

일본 등 외국 사례에서 보듯 한번 망가진 바다 환경은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해 어민들에게 항구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철저한 조사를 해 모래 채취로 인한 어업피해를 규명하고 합당한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바닷모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재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경기도 여주의 준설토 적치장에 있는 3천500만㎥를 비롯해 낙동강, 금강, 영산강 주변에 준설토 7천793만㎥가 쌓여있다.

이것만 활용해도 바닷모래 채취를 2년은 중단할 수 있다고 어민들은 주장한다.

이정삼 실장은 "국토부가 4대 강 준설 모래는 운반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농축수산물 등 모든 상품은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가는 비용이 제품가격에 포함되며 소비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며 "골재가 건설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 미만으로 운반비가 더 든다고 해도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 실패에서 빚어진 일인 만큼 정부가 골재업계에 추가로 드는 운반비를 보전해 주는 방안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상대학교 김우수 교수는 바닷모래 채취를 전면 금지한 일본과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는 영국 등 외국의 사례를 들어 정부가 골재채취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본은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환경파괴 때문에 1998년 히로시마현을 시작으로 여러 현에서 채취를 금지하고 대신 파쇄석과 수입모래의 비중을 높였다.

영국은 골재에 세금을 매겨 해저지형 조사와 피해자 보상에 사용한다. 골재업자가 채취 허가를 받으려면 미리 환영영향평가서를 내야 하고 과학자그룹이 이전에 이뤄진 채취량까지 누적해 환경영향을 따진다. 어민 등 이해 관계자의 동의도 받도록 하고 있다.

정연송 대책위원장은 "해양환경 파괴와 어자원 감소로 인한 피해는 결국 전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후손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며 "벼랑으로 내몰린 어민들의 절규를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lyh950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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