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수의 심장' 대구, 다시 뛸까…"박근혜는 애증의 존재"

입력 2017-03-19 07:35  

[르포] '보수의 심장' 대구, 다시 뛸까…"박근혜는 애증의 존재"

朴 전대통령 파면에도 겉으론 평온…50대상인 "독재에 길든 도시"

"기회 걷어찬 건 박근혜" 비판론…"인간적으로 심했다" 동정론도

(대구=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대구의 봄은 서울보다 일찍 온 듯했다. 18일 도착한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17도였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밝고 가벼워 보였다.

동대구역에 내려 한 대학생에 말을 걸었다. 대구 출신이었다. "서울에 있는 데 다닙니다"고 소개했다. 끝내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정면의 TV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검찰 수사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속이 다 시원하죠. 잘 됐다고 생각해요"

그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속이 시원하다'고 한 이유는 "쪽팔려서요"였다. "고향이 대구라고 하면 '박근혜 지지하냐'라는 소리 듣는 게 싫었다"는 것이다. 자리를 뜨려 할 때 5월 9일 대통령 선거 때 투표할 것이냐고 물었다. "아뇨"라는 대답에는 무심함이 묻어 있었다.

역사(驛舍) 맞은편에서 개인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정치에 관심이 무척 깊은 것 같았다. 스스로 "대구 촌놈"이라며 김명수 씨라고 이름을 밝혔다. 나이는 61세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김 씨는 침을 튀기며 열변했다. "그 패거리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고 오른 주먹을 허공에 휘저었다. 친박(친박근혜)계를 가리킨 듯했다. "대구가 맹목적이니 저렇다. 전봇대에 옷만 입혀줘도(선거 벽보만 붙여도) 당선됐다"고 말했다. "이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감싸는 '태극기 부대'에 비판적이었다. 자신의 택시 후미에 태극기가 꽂혀 있지만, 3·1절 때 달아 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밝혀진다고 했는데, 진실을 밝힐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고 꼬집었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다소 의외였다. 20대 대학생이야 그렇다 쳐도, 60대 택시 운전사의 반응은 예상보다 박 전 대통령에 냉담했다.

알쏭달쏭했다. 그래서 서문시장 주변의 한 귀금속 상점에 들어갔다. 면허증 액자에서 이름 석 자가 눈에 띄었다. 자신이 50대라는 상점 주인은 '서모 씨'로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질문했다. 서 씨는 보수주의자라고 털어놨다. 이어 "개인적인 거요, 대구 전반적인 거요"라고 되물었다.

둘 다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그래도 대구는 '독재에 길든 도시'"라고 정의했다. "대구 사람들에 박근혜는 '애증의 존재'"라고 말했다. "바이마르 헌법으로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를 뽑았다. 자신들은 파시스트라는 자각도 없었을 것"이라고 역사 지식도 뽐냈다.

묻지도 않았는데 "해병대 군복 입고, 라이방(선글라스) 끼고 나온 사람들은 (나치의) SS 친위대"라며 '태극기 부대'를 힐난했다.

이어진 말에서 한사코 '익명'을 요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지역 교장 선생님들을 많이 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대구에서 입 잘못 놀렸다간 호되게 당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대구에 온 건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의 출마 선언 취재 차였다. 그는 서문시장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서문시장 도로변에 채소 좌판을 깐 한 노파 앞에 쭈그려 앉아 인사를 건넸다. 기대만큼 매상이 오르지 않는 듯했다. 주름이 얽힌 얼굴은 몹시 찌푸려져 있었다.

서울에서 온 정치부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대뜸 역정을 냈다. 다소 두서가 없었지만, 요지는 "언론의 '편파 보도'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는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이 인정돼 파면당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되지"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대선 때 누구를 찍을 거냐고 화제를 돌렸다. "몰라. 난 그런 거 모르고, 대통령이 불쌍하지 않으냐"라는 말만 돌아왔다.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막상 선거 때 보수 진영 후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홍 지사에 대해 택시 운전사 김 씨는 "딱히 호불호는 없다"고 잘랐다. "말은 후련하게 하는데, 좀 품위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태극기 부대'를 이끄는 김진태 의원은 어떠냐는 질문에 귀금속 상점 주인 서 씨는 "왜 저러는지 속이 뻔히 보인다"고 고개를 저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이름을 꺼냈다. 유 의원은 19일 대구를 찾는다. 그랬더니 서 씨는 "아버지(고 유수호 전 의원)를 넘지 못하는 건 박 전 대통령과 똑같다"고 혹평했다.

얘기를 나눠 본 시민은 인터뷰를 사양한 서문시장 상인을 포함해 5명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보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주자를 자신 있게 꼽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박근혜"였던 2012년 대선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홍 지사 일행을 뒤로하고 서문시장을 떠났다. 해가 어느새 기울었다. 봄기운으로 가득 찼던 대구의 공기는 제법 쌀쌀해졌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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