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 "데뷔후 나였던 순간없어…30년간 돌다가 내자리 찾아"①

입력 2017-04-08 11:00   수정 2017-04-08 11:11

김완선 "데뷔후 나였던 순간없어…30년간 돌다가 내자리 찾아"①

27년 만에 콘서트…"춤 없으면 김완선 아냐, 류태준과 살사 무대 기대"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배운 연습생 시절…이수만 대표, 절 보고 보아 키웠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마이크를 잡은 김완선(48)의 몸짓은 경쾌했다.

밴드·코러스와 함께하는 연습인데도 리듬에 몸을 맡긴 듯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부르며 예쁜 실루엣으로 춤을 췄다. 드러머 신석철 등 연주자들에게 사운드의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내기도 했다.

강렬한 록 사운드로 편곡한 '오늘밤'을 끝으로 공연 연습을 마친 김완선을 최근 서초구 양재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15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27년 만의 단독 콘서트 '디 오리지널'(The Original)을 앞뒀다.

밴드 멤버들에게 "고생했다"며 살갑게 인사한 김완선과 인근 카페로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은 1988년, 1990년 두 번 했으니 27년 만이네요. 지난해 30주년을 보내고 이 시간을 버틴 저와 변함없이 응원해준 팬들에게 기념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인들이 100일, 1000일 선물을 주고받듯이요."

차분한 말투와 서늘하고 고혹적인 눈매는 변함없었고,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지난해부터 왕성하게 신곡을 내고 예능, 영화까지 섭렵하며 보폭을 넓혔다. 17일에는 신곡 '잇츠 유'(It's you)와 대표곡들이 담긴 앨범 '디 오리지널'도 발표한다.

그는 "30년간 돌고 돌다가 최근 내 자리를 찾아 안착하는 것 같다"며 "30대에는 거의 활동을 안 했고 40대가 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완선을 데뷔시킨 음반제작자인 이모 고(故) 한백희 씨의 아들로, 1998년 그룹 오룡비무방 멤버로 활동한 사촌 동생 김정현 씨가 그의 의욕적인 활동을 돕고 있었다.

다음은 김완선과의 일문일답.




-- 연습 도중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던데.

▲ 오늘까지 세 번 타이트하게 연습했는데 너무 재미있다. 사실 콘서트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 미뤄놓곤 했다. 나 같은 경우 노래뿐 아니라 춤도 선보여야 하니 거기에 맞는 연출과 무대, 의상까지 준비할 게 너무 많다. 작년에 제안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다가 팬들이 생각나 1년 만에 성사됐다.

-- 공연 감독이 영화 '26년'을 연출한 조근현 감독이라고.

▲ 작년 겨울 조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한국 개봉 제목 가제는 '헤이데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나의 첫 영화다. 촬영이 끝날 즈음 콘서트를 준비한다고 하자 감독님이 '편집하고 남은 장면을 공연 영상으로 활용해보라'고 제안하시길래 영감이 왔다. 감독님이 연출하면 뭔가 색다른 공연이 될 것 같았다. 음악도 많이 들으신 분이라 연출 제안을 했더니 '안 해본 장르여서 재미있겠다'고 하셨다. '디 오리지널'이란 타이틀도 감독님이 붙여주셨다.

-- KBS 2TV '불타는 청춘'을 보니 배우 류태준 씨가 이번 공연에서 살사를 함께 추겠다고 약속하더라.

▲ 춤이 없는 김완선은 김완선이 아니다. 하하. '불타는 청춘'에서 류태준 씨와 영화 '더티 댄싱' 춤을 함께 췄는데 리듬감이 있더라. 류태준 씨가 첫 녹화 때 팬이었다면서 구하기 힘든 CD를 갖고 와 사인을 요청했는데, 좋아하는 가수에게 '민폐가 되면 안 된다'고 정말 열심이다. 그래도 살사는 단기간에 춰지는 춤이 아닌데 연습을 한두 번 해보고 걱정을 놓았다. 너무 빨리 배우는 걸 보니 타고났다. 공연이 끝나도 살사 클럽에 갈 기세더라. 하하. 살사가 보는 사람도 설레게 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끌어내는 춤이어서 나도 이 무대가 기대된다.




--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며 산 30년은 어땠나.

▲ 사실 숫자는 정말 빼고 싶다. 옛날 생각을 진짜 안 한다. 쉽게 잘 잊어버리는 기질인 데다가 스스로 '지금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 이 순간의 감정, 일, 사람,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하다. 그래도 돌아본다면 가장 임팩트 있었던 순간은 데뷔하기 전 연습생으로 보낸 3년이다.(김완선은 1983년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댄서로 활동하다가 3년의 연습을 거쳐 1986년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 그 순간이 '임팩트'가 있는 이유는.

▲ 그때는 온전히 '나'였다. 음악이 너무 좋아 이모에게 와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가장 음악을 많이 듣고 몸이 부서지라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공상도 하고 안달도 냈던 시기다. 데뷔 후부터는 나였던 순간이 없었다. 그래서 쉽게 잊혀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로 많이 산다. 굉장히 큰 구멍이 있었는데 (하와이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컴백한) 2011년부터 그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이 음악, 저 음악 해보면서 나를 많이 채워나갔다.

-- 1980년대에 지금과 같은 연습생 시스템이 있었던 게 흥미롭다.

▲ 노래, 춤, 작곡, 악기, 일본어 등을 배웠다. 16살 때 이미 화성악과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레슨받았다. 당시 선생님이 '넌 지금 대학교 4학년 수준'이라며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소리도 작은데 무슨 가수냐. 여성 작곡가가 되면 멋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모는 세계적인 아시아 가수를 키우겠다는 꿈이 있었다. 당시 SM 이수만 대표가 우리 사무실에 자주 찾아와 이모와 대화를 나눴는데 나의 연습 과정을 본 뒤 보아를 키웠다.




-- 데뷔 이후 발표한 앨범을 보면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등 작곡가들이 황금 라인업이다. 이들이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생각을 했던 게 신선한데.

▲ 우리 이모가 난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한 기획은 아니다. 이모는 무대에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무조건 춤을 가르쳤다. 이모가 미8군에서 쇼를 한 가수여서 음악과 무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았다. 대중의 취향에 맞는 가수를 만들어 낸 것이다.

-- 데뷔와 함께 상을 휩쓸며 김완선의 시대가 열렸다. 5집으로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는데, 1992년 6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홍콩으로 떠난 이유는.

▲ 홍콩 진출을 염두에 둔 이모는 강렬한 이슈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지만 그땐 해외 활동이 알려지기 어려운 시대였다. 고민 끝에 은퇴란 이슈를 생각한 듯하다.

-- 홍콩에서 머물다가 대만으로 옮겨 석 장의 앨범을 내며 사랑받았으니 원조 한류 스타다. 클론이 대만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김완선의 나라에서 온 듀오'라고 소개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 홍콩에선 현지 가수의 듀엣곡에 참여한 정도이지 제대로 활동한 건 아니었다. 당시 홍콩과 대만을 두고 고민하다가 1997년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시기라 대만을 선택했는데 잘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하.

-- 1996년 7집으로 컴백했지만 2005년까지 복귀와 공백이 반복됐다. 2006년에는 갑자기 하와이로 떠났는데.

▲ 하와이에서 3년가량 있었는데 한 대학에서 디지털 아트(사진)를 전공하며 그림 수업도 들었다. 사진과 그림을 이때 배우며 지금까지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전시회에 참여한 적도 있다.




-- 2011년 다시 복귀한 뒤 음악적인 변화가 눈에 띄었다. 특히 작년에 발표한 '강아지', '유즈 미', '셋 미 온 파이어', '미르' 등의 싱글에선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을 아우르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는데.

▲ 40대에 다시 시작하면서 해마다 싱글을 냈고 작년에는 여러 곡을 냈다. 나름대로는 30년의 음악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내게 잘 맞는 음악 스타일을 찾고자 여러 장르를 시도했다. 사촌 동생 정현이와 3인조 프로듀싱팀 'KW선플라워'(김완선의 기획사 이름이기도 하다)를 만들어 자유롭게 곡 작업을 하고 있다.

-- 곧 나올 새 앨범을 소개해달라.

▲ 신곡 '잇츠 유'와 2011년부터 낸 싱글을 모아 한 장의 CD에, 내게 저작인접권이 있는 앨범의 대표곡을 두 장의 CD에 모아 총 30곡가량 수록됐다. KW선플라워가 작업한 '잇츠 유'는 정말 내 색깔이 많이 들어갔다. 작년에는 시도하지 않은 스타일로, 발라드인데 EDM 톤이 입혀져 춤도 출 수 있다. 나의 음악적인 방향을 좀 찾은 것 같다. 올해도 꾸준히 싱글을 낼 계획이다.

-- 1980~90년대 활동한 박남정, 원미연 씨 등이 비슷한 시기에 컴백했는데.

▲ 많이들 활동했으면 좋겠다. 원미연 씨에게 '목소리가 아까운데 왜 노래를 안 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난 노래를 잘 못 해도 계속하는데 말이다. 하하.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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