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임정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유적 되살린다

입력 2017-04-11 10:00   수정 2017-04-11 13:53

서울시 임정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유적 되살린다

임정기념관 건립…경교장, 독립문 등 일대 명소 연결해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 조성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98년 전 3월1일 전국 방방곡곡에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다. 그 기세를 몰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국호로 임시정부를 세웠다.

서울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대비해 독립운동 유적을 복원하고 조망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특히 서대문 임시정부 기념관이 국립시설로 건립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3.1운동을 처음 보도한 앨버트 테일러가 거주한 딜쿠샤를 복원한다.

이미 복원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된 경교장 등이나 독립문 등을 포함해 독립운동 클러스터를 구성하고 10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대한민국 기틀이 된 임시정부 수립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이 발표되자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독립을 외치는 함성이 나왔다.

만주 길림에서 망명인사 39명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필라델피아 등 한국인이 사는 모든 곳에서 독립선언이 나왔다.

이들은 대한은 자주독립국이며, 일제가 강요한 한일합방은 무효라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독립 국가의 정부조직체가 등장했다. 3월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선포됐고 국내에는 한성정부 선언이 나왔다. 평북 선천과 의주일대에도 신한민국정부가 등장했다. 전단으로만 알려지는 정부도 여럿 있었다.

그 흐름이 이어지며 상하이에서 임시의회가 구성됐고 4월11일에는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현 국회와 정부는 1919년 4월11일에 수립된 임시정부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임시정부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이와같이 밝혔다.

이날 행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세계 각지에 흩어졌던 독립운동 대표들이 3.1운동 후 상하이로 몰려왔다.

한성정부와 대한민국의회 조직 움직임에 이들도 속도를 높였다.

4월9일부터는 밤을 지새우며 본격 회의를 했고 29명으로 각 지방 대표회를 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것이 임시의정원, 우리나라 첫 의회 조직체다. 국회 결성을 염두에 둔 임시의회로, 1948년 정식 구성된 대한민국 국회의 기원이다.

당시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 10조에도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 국회를 소집한다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의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한은 대한제국에서 가져왔고, 근대국가를 지향하며 제국 대신 민국을 선택했다.

정부조직 구성과 내각 구성원을 선발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도 제정했다.

3.1운동을 찬양하는 내용의 선서문과 정강도 채택했다.

제헌의회인 임시의정원 4월10일 첫 회의에서 이와같은 내용을 정하고 드디어 다음날 임시정부를 세웠다.

김 교수는 "1919년 대한민국 건립은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 2019년 3.1운동과 건국 100주년

서울시는 3.1운동과 건국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유적을 복원하고 독립운동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중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되, 시립이 아닌 국립 시설로 위상을 높이는 일에 있다.

기념관은 시유지인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시유지에 지으면 시립 시설이 되므로, 서울시는 행정재산 교환 방식으로 서대문구의회 부지를 국유지로 만들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 정통성을 강조하는 시설이므로 특정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 판단이다.

서울시가 발 벗고 나선 것과 달리 국가보훈처 등 중앙정부는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사업은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반면 딜쿠샤를 원형으로 복원해 2019년 3월1일에 맞춰 역사 기념관 등으로 개방하는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딜쿠샤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전 세계에 최초 보도한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다.

테일러는 스코필드·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을 찾아가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 항의하기도 한 인물이다.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딜쿠샤는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이상향'이라는 뜻을 가진 서양식 빨간 벽돌 건물이다.

1923년 건축됐으며 테일러 부부는 1942년 일제 협박에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사용했다.

딜쿠샤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되며 2001년부터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06년에는 문화재청이 등록 계획을 예고했지만, 주민 무단점유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 무산됐다.

딜쿠샤에는 12가구 23명이 불법으로 거주했다.

서울시는 딜쿠샤 복원 계획을 세우고 임대주택 알선 등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부터 5가구를 이주시켰다.

현재 남은 7가구 중 이달 말까지 6가구가 나갈 것으로 보이며 1가구는 연락 두절이다.

시는 문화재청에 국가등록문화재 신청을 내 뒀으며 다음 달에 심사를 받는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건물 보수 등에서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임정기념관과 딜쿠샤를 비롯해 경교장, 독립문, 옛 서대문형무소 등 일대 명소를 연결해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경교장은 1945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린 곳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4년간 거주하다가 1949년 6월26일 암살당해 숨진 장소이기도 하다.

3년여 복원작업을 거쳐 2013년 3.1절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김구 선생 서거 후 미군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사들였다.

역사 유적인 경교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면서 시와 삼성병원이 오랜 협의를 거쳐 소유권은 남긴 채 복원하는 데 합의했다.

2층 집무실 복도에는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이 재현돼 있다. 임시정부 회의가 열렸던 '응접실', 임시정부 대외 홍보 등을 담당한 '선전부 사무실', 공식 만찬이 열린 '귀빈식당' 등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서울시는 이 밖에 안국역 항일 독립운동 테마역사, 독립운동가 추모 전시관 '만인보(萬人譜)의 방' 설치, 삼일대로 일대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 등도 계획하고 있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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