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북한제 담배꽁초 발견됐지만 진상 못 밝혀
북, 미얀마 상대 위협·유화책 번갈아 구사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북한이 아웅산 테러범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의 딸 피살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당시 우리 정부가 포착한 사실이 11일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986년 12월 이상옥 당시 주제네바 대사는 주제네바 미얀마 대사와 만난 뒤 작성한 2급 비밀문서에서 "아웅산 테러사건 재판에 관여했던 판사의 딸이 약 1년 반 전 일본 유학 중 변사한 사건이 있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어 "현장에서 북한제 담배꽁초가 발견됐으며 자살할 만한 특별한 동기도 없어 사인 규명에 노력했으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는 1983년 10월 9일에 발생했다. 미얀마 법원은 북한 공작원 김진수, 강민철을 테러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를 벌인 뒤 그해 12월 9일 사형을 선고했다. 이 가운데 김진수만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9월 우리 정부가 아웅산 테러사건 2주기 외교 조치를 위해 기안한 문서에는 당시 미얀마 측이 '진모'(당시 김진수에 대한 호칭) 처형 보도를 삼가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적혀 있다.
아웅산 테러 담당 판사의 딸이 일본에서 살해된 시점은 1985년 6월께로, 김진수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일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아울러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주제네바 미얀마 대표부에 폭탄장치를 설치했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와 직원들이 대피하고, 경찰이 건물을 수색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수색 결과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북한이 위협뿐 아니라 적절한 유화책를 통해 미얀마와 관계 회복을 노린 정황을 당시 우리 정부가 포착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문서는 아웅산 테러 이후 북한과 미얀마의 복교나 관계개선을 위한 접촉이 없었음에도, 당시 각종 국제회의나 몇몇 국가의 수도에서 북한 인사들이 미얀마 대표단이나 외교관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1983년 11월 4일 미얀마 정부가 아웅산 테러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강력한 대북제재 조처를 하자 김일성이 급거 중국을 방문한 사실도 이 외교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문서는 "당시 중공(중국) 측은 북한의 범행임이 입증된 이상 외교관계 단절은 이해할 수 있으나 버마(미얀마) 정부가 북한의 승인을 취소하는 조치까지 취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문서는 "(미얀마가) 수사의 공정성을 대외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수사결과를 입증해야 했다"며 "당시 한국 측이 버마 정부에 지나치게 강압적이거나 조급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수사를 측면에서 지원하면서 기다려 준 것은 버마의 자존심을 존중해주고 사건처리를 도운 결과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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