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학생들 마음 어루만지는 시각장애 선생님

입력 2017-04-20 06:00  

시각장애 학생들 마음 어루만지는 시각장애 선생님

강원명진학교 박병찬 교사 등 128명 '장애교육 헌신' 표창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강원명진학교의 박병찬(46·시각장애 1급) 교사는 24년 전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993년 3월, 당시 한림대 경제학과 4학년이던 박 교사는 고시 준비를 위해 고향인 강원도 화천을 떠나 춘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나 버스에서 내린 순간 눈앞이 갑자기 뿌옇게 변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몇 번이고 비벼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당황이 돼서 믿을 수가 없었어요. 기억을 더듬어 겨우 택시 정류장 쪽으로 가 택시에 올라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화를 내시더라고요. 택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제가 안보이니까 맨 앞이 아닌 중간에 있는 택시를 탔던 겁니다."

택시 기사에게 "눈이 안보여 그랬다"고 얘기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택시 기사는 그를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 내려줬다고 한다.

박 교사는 "공중전화 부스를 겨우 찾아 부모님께 전화해 눈이 갑자기 안보인다고 하니 부모님은 충격에 기절을 하셨다"며 "누나에게 빨리 와 달라고 했는데 누나를 기다리는 한시간이 한달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결국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인생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다행히 대학 친구가 입대를 미루고 손과 발이 되어준 덕분에 대학은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서울맹학교에 입학해 고교 과정부터 다시 배웠다. 점자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뒤 공주대 사범대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결국 특수교사의 꿈을 이룬 그는 고향이 있는 강원도의 강원명진학교에서 2002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치부에서부터 초·중·고, 전공과 과정까지 100여명의 시각장애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 학교에서 그는 침술, 안마, 마사지, 지압 등 직업교육을 담당하며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 주민,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마 봉사활동을 하면서 시각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박 교사는 20일 제37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학생 교육에 헌신한 공로로 교육부 표창도 받게 됐다.

박 교사는 "눈이 안 보이는 학생들의 심정은 겪어본 제가 제일 잘 안다"며 "특히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보다 저처럼 중도에 시력을 잃은 학생들이 더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늘 포기하지 말라고, 꿈을 갖고 도전하면 일반인처럼 살 수 있다고 얘기한다"며 "우리 사회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점자 보도블록 등 시각장애인 이동 편의를 위한 기본 시설만이라도 제대로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박 교사 외에도, 장흥과 강진 등 장거리를 오가며 중증장애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온 덕수학교 이규진 교사, 두 다리와 왼팔이 불편한 장애 대학생을 위해 5년간 손과 발이 되어준 목원대 대학원생 김만섭씨 등 총 128명을 유공자로 선정해 표창했다.

이준식 부총리는 "장애학생 교육에 공헌한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도 장애학생이 행복한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y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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