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학자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저는 지식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정의를 들었습니다. 지식인이란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을 말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내뱉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5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공화당 집회에서 지식인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이처럼 엘리트 지식인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고 배제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 펴냄)는 그가 '지식인 혐오'의 원인을 분석해 1962년 내놓은 책이다.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책의 주제인 '반지성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성에 대한 경멸과 성공 일변도의 사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는 반지성주의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반지성주의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18세기 미국에서 번져 나간 세속적인 신앙부흥운동을 반지성주의의 기원으로 본다. 학문으로서의 종교에 염증을 느낀 대중은 마음속 지혜를 강조한 복음주의자들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어렵게 공부하지 않아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하루하루 고단한 일상을 살았던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후 반지성주의와 과학이 계속해서 충돌했다고 지적한다. 일례가 1925년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서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이다.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스코프스는 성서에 반하는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결국 100달러의 벌금을 받았다. 그리고 1950년에는 반공과 반지성주의가 결합해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이 몰아치기도 했다.
엘리트 지식인에 대한 회의와 적대감, 멸시가 특징인 반지성주의는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지만, 저자는 반지성주의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권위적인 엘리트들이 구축한 '지성주의'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지식과 권력의 결합에 반대하는 반지성주의가 새로운 지성을 낳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식인과 전문가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으로부터의 소외를 자처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이어 "권력을 지향하는 지식인과 비판적인 지식인을 아우르는 지성이 지식인 공동체 내부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말한다.
196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다룬 또 다른 책인 모리모토 안리의 '반지성주의'보다 더욱 풍부한 논의가 담겼다. 유강은 옮김. 680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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