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김경주·나희덕…문인들이 기록한 울고 웃는 세상사

입력 2017-05-02 08:00  

이기호·김경주·나희덕…문인들이 기록한 울고 웃는 세상사

에세이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르포 '틈만 나면 살고 싶다'

나희덕은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소설가 이기호(45)와 시인 김경주(41)·나희덕(51)이 산문집을 나란히 펴냈다. 세상 사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산문집의 매력에, 이기호와 김경주는 색다른 형식의 시도로 가족과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을 보탠다.

이기호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마음산책)에는 작가가 세 아이를 키우며 느끼고 겪은 44가지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월간지에 '유쾌한 기호씨네'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에세이다. 한데 묶어놓고 보면 아이들의 성장담이자 동고동락하는 한 가족을 주인공 삼은 한 편의 소설로도 읽힌다. 작가는 '가족 소설'이라고 이름붙였다.

이야기는 이미 두 아들을 둔 부부에게 새 아이가 생기면서 시작한다. 육아 때문에 대학원을 포기한 아내와 함께 미래를 궁리할 새도 없이, 엄마 등에 올라타고 총질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활규칙을 일러줘야 한다. "엄마 몸에 코코몽이 들어왔거든……코코몽이 아직 너무 작아서……그래서 우리가 잘 지켜줘야 해."

아내는 연애 시절 전화통화를 마칠 때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공손히 인사했다. 조교와 학생 사이로 만난 데다 아내가 여덟 살 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나이는 온데간데 없고 남편과 아이들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킨다. "나이고 뭐고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위대하구나." 기저귀를 사러 한밤중 마트로 달려가면서도 반항하기는커녕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향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부부는 어느날 대출상환의 압박을 감수하고 새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다. 대형마트가 없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다. 전에 살던 아파트 정문 앞에는 5층짜리 대형마트가 있었다. 아이들이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장기자랑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랄랄랄랄랄랄라 햇빛햇빛햇빛 맑은 날 우리 가족 손잡고 함께 가요, 이마트. 행복해요, 이마트."

이야기들에는 희극과 비극을 자유자재로 버무리는 작가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일곱 살이 됐다. 248쪽. 1만2천500원.




시인이자 극작가·번역가로 활동하는 김경주는 르포 에세이 '틈만 나면 살고 싶다'(한겨레출판)를 출간했다. 시인이 보고 들은 서른일곱 명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포착해낸다.

중국집 배달원, 바텐더, 벨보이, 야설 작가, 경마장 신문팔이, 엘리베이터 걸, 대출 상담사…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또는 임시직이다. 곡절 많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는 편견 어린 시선에 여전히 상처받는다.

인형 탈을 쓰고 연기하는 '슈트액터' 칼은 공연이 끝나고도 발차기를 하거나 주먹을 날리는 아이들에게 시달린다. 인형 머리를 벗겨보려다 아이가 울자 엄마는 "이딴 서비스가 어딨냐"며 화를 낸다. 피에로 복장을 하고 나이트클럽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을 목격한 장모님의 문자 메시지. "김 서방, 진정으로 자네가 창피했네" 그러나 칼은 분윳값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한다.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과거 '이곳을 털까? 저곳을 털까?' 궁리하던 헐은 이제 '이곳을 오늘 배달할까, 내일 갈까?' 고민한다. 절도죄로 복역하다 출소해 비정규직 상시 위탁 집배원으로 일한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몇 개월 한 끝에 정식 우체국 집배원을 꿈꾸고 있다. 감옥에선 바깥소식이 너무 궁금했고, 나와선 소식 나르는 일이 살맛 난다.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살갑게 맞아주던 독거노인의 주검을 발견했을 땐 마당에 쭈그려 앉아 오열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는 게 세상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헐은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살아갈 '틈'을 찾으며 일상을 이어가지만 남들이 말하는 평균치의 삶에는 미치지 못한다. '6,655: 현재 가구의 평균 부채. 6655만원. 전년에 비해 6.4% 증가. (2016년 3월 기준)' 시인은 헬조선이나 흙수저 같은, 어찌보면 편리한 담론을 들이대는 대신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몇몇 통계로 오늘날 한국사회를 세밀하게 그린다. 신준익 그림. 232쪽. 1만3천원.




나희덕은 세 번째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를 펴냈다. 국내외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길과 시간에 대한 단상을 산문 45편에 담았다.

런던 도심에서 개 여섯 마리를 데리고 있는 젊은 노숙자에게 시인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노숙자는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개들에게 내어주고 시멘트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다. "개는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고, 책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그의 정신을 지켜줄 것이다. 어두워지는 거리에 서서 그를 오래 바라보며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전주 한옥마을을 걷다가 '인생 부동산'이라는 상호와 마주친다. 그러고보니 인생과 부동산은 여러 모로 닮았다. "시세가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가 있다는 것. 투자 한번 잘못했다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는 것."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란다. "역시 인생의 길을 일러줄 진정한 허가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구나."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글과 어울려 읽는 이를 산책길에 나서게 만든다. 208쪽. 1만4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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