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살해 1주기 추모…"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종합)

입력 2017-05-17 20:16   수정 2017-05-17 20:27

강남역 여성살해 1주기 추모…"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종합)

여성단체 연대 기자회견…"여전히 폭력·혐오 만연" 지적

신촌·홍대서 침묵 퍼포먼스…신논현역에서 추도 문화제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김현정 양지웅 이승환 기자 =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는 다시 포스트잇을 들겠습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인 17일 정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여성단체들이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스스로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로 규정했다. 여성 누구라도 지난해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의 유명 노래방 건물 남녀공용 화장실에 들렀다면 살해를 당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경찰과 검찰은 당시 23세 여성 A씨를 흉기로 살해한 범인 김모(34)씨를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고 결론지었지만, 여성운동계에서는 "여성을 기다렸다가 범행했다"는 김씨의 진술내용에 근거해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통을 자랑하는 주요 여성단체와 '불꽃페미액션', '범페미네트워크' 등 신진 여성단체들이 연대했다.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모인 '강남역10번출구' 등 신생 단체도 함께 했다.

참가자 60여명은 대부분 고인에 대한 추모 의미로 검정 의상을 입었다. 검정 마스크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이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여성장애인도 1명 참가했고, 남성은 3명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지난해 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었던 3만여장의 접착식 메모지(포스트잇)에서 따온 문구들을 포스트잇 모양 천에 적어 들었다. '여성에겐 모든 곳이 강남역이다', '좋아하는 치마를 입고 밤거리를 다니고 싶다',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등이 쓰여 있다.

이들은 이날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조용하고 조신할 것'을 강요하고 있지만, 여성은 더 연대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지독하게도 범행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았다"며 "경찰과 정부는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범죄'로 규정하며 오히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했고, 여성들의 추모 움직임에 온라인상 혐오와 폭력이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자유발언에서는 강남역 사건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공동대표는 "여전히 여성들은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몰카'를 찍히고, 성추행을 당하고, 가족과 친구에게마저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면서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은 주체적으로 요구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3시 신촌 유플렉스 광장, 오후 5시 홍대 걷고 싶은 거리로 장소를 옮겨 각각 30분씩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마련해놓은 공간에 지나가던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추모의 글을 적어 붙였다.

신촌을 지나가던 취업준비생 현모(27·남)씨는 "작년 강남역에서 포스트잇을 붙였던 게 생각나서 다시 펜을 잡았다"며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21·여)씨는 "강남역 사건을 겪고 나서 여자들은 왜 밤거리를 무서워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며 "이런 이상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후 7시에는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250m 떨어진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범페미네트워크 주관으로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한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건물에 들러 묵념을 했다. 이어 1년 전 이날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던 강남역 10번 출구까지 침묵 행진을 하고 그곳에 하얀색 국화를 헌화했다.

이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여성혐오가 죽였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손에는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피켓이 쥐어져 있었다.

이날 강남역 여성살해 1주기 추모 문화제는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전주, 울산, 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hy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