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에서 국민으로"…38선 이북 '수복지구'는 어떻게 변했나

입력 2017-06-07 06:51  

"인민에서 국민으로"…38선 이북 '수복지구'는 어떻게 변했나

신간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나눴다. 북위 38도 선을 의미하는 38선은 두 열강의 편의를 위해 그어진 분계선에 불과했다.

하지만 38선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기됐다.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약 250㎞ 길이의 휴전선이 생겼다. 구불구불한 휴전선은 북위 38도보다 북쪽에 있는 지역 상당수를 남한으로 편입시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지역이 이른바 '수복지구'(收復地區)다. 수복지구는 '다시 찾은 땅'이라는 의미로, 38선과 휴전선 사이에 있는 경기도 연천, 강원도 양양·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등이 해당됐다.

신간 '한국전쟁과 수복지구'(푸른역사 펴냄)는 한국전쟁 전후의 현대사를 연구해온 한모니까 박사가 수복지구인 인제에서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벌어진 일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인제를 포함한 수복지구의 해방 이후 역사를 네 가지 단어로 설명한다. 일제의 '신민'에서 북한의 '인민'과 유엔군정의 '주민'을 거쳐 남한 '국민'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북한 사람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지향하는 이념이 전혀 다른 남한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다.

체제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인제 사람들은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했다. 그들은 일제가 물러가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일순간에 황제의 백성에서 주권의 원천이 됐다.

북한은 봉건적·식민지적 사고를 버리고 애국주의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또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소작농과 자작농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가난한 농민을 인민위원으로 선출해 행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식민시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북한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국가가 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려 하는 태도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제 사람들에게 일본은 보국의 대상, 북한은 애국의 대상이었다"면서 "보국과 애국을 위해 근검절약하고 수시로 물적·인적으로 동원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남한 땅으로 귀속된 뒤에도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한 정부는 수복지구 원주민들이 북한에 부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이러한 이중적 발상은 당시 시행 중이던 지방자치제를 수복지구에는 적용하지 않는 차별 대우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제 사람들은 국제적 역학관계에 의해 북한 인민이 됐지만, 이 사실을 약점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며 "이들은 철저하게 침묵하거나 과거를 묵인하고 남한이 북한보다 낫다는 집단기억을 만들어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복지구의 체제 전환은 구체제와의 단절과 연속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며 국가는 구체제와의 작별을 원했지만, 주민들은 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연구가 지금도 의미 있는 이유는 수복지구가 남과 북이 통일됐을 때 충분히 참고가 될 만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엔군 사령부가 휴전 시점에서 1년여가 지난 1954년 11월 수복지구를 남한에 이양할 때 '법적 행정권'이 아닌 '사실상의 행정권'만을 넘겨줬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38선 이북∼휴전선 남쪽'의 행정권은 국제적으로 논란이 돼온 만큼 통일을 이룬 뒤에도 남한이 당장 북한을 통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수복지구에서의 경험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수복지구 주민이 겪은 '복수의 역사경험'에 대한 인식이 확산한다면 이곳은 분단의 경계지대에서 남북통일의 시험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536쪽. 3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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