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약자 배려' 구례 운조루, 빨치산 방화·약탈에도 건재

입력 2017-06-15 15:17  

[숨은 역사 2cm] '약자 배려' 구례 운조루, 빨치산 방화·약탈에도 건재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극심한 경제 불평등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허망하다는 점을 강조한 이 발언은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는 세종대왕의 식위민천(食爲民天) 사상과 통한다.

문 대통령은 소득 불평등 완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계와 정규직 노조, 정부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자는 호소도 했다.






모든 경제 주체가 부담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나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도약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자리는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이므로 우리 함께 새로운 경제 민주주의 기준을 세우자는 제언도 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하려면 우리 선조들의 약자 배려 전통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옛 농민들은 콩을 파종할 때 한 곳에 세 알씩 뿌렸다고 한다.

새와 땅속 벌레가 한 알씩 먹고 남은 한 알만 인간의 몫이라는 생각에서다

감나무 꼭대기 감을 따지 않고 남긴 까치밥에도 공존과 나눔의 정신이 배어있다.

전남 구례군 운조루와 경북 안동시 담연재 전통가옥은 상생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집이라는 운조루는 조선 시대 무관 류이주(1726~1797) 선생의 고택이다.

운조루는 유명한 중국 시인 도연명(365~427년)의 시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건물 형태는 ㅡ자나 ㄱ자 또는 이들을 조합한 호남 전통가옥과 달리 ㅁ자다.

임진왜란 영웅 서애 류성룡(1542~1607년) 선생의 종택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과 빼닮았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경북 지역 가옥에 익숙한 류이주 선생이 설계한 영향으로 추정된다.

17세에 상경해 28세에 무과에 급제한 선생은 문경 새재에서 채찍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영조 시절 당파싸움에 휘말린 선생이 구례로 낙향한 게 운조루를 건축한 계기다.

지리산 노고단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형상(금환락지)을 한 터를 발견하고서 가족과 친척이 살 저택을 지었다고 한다.

금환락지 집에 살면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집 뒤에서 지리산이 감싸고 앞으로 탁 트인 들판 사이로 섬진강 물이 굽이쳐 흐르는 운조루는 남한 3대 길지에 포함된다고 한다.

긴 공사 끝에 1782년 완공된 99칸(현존 73칸) 전체를 운조루라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뒤주(쌀독)에는 235년간 이어진 이웃 사랑과 배려 정신이 스며있다.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뒤주 아래에는 쌀을 꺼내고 닫는 마개를 달아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자를 새겼다.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마개를 열어 필요한 양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뒤주는 다른 사람이 잘 볼 수 없는 뒷골목 쪽에 뒀다.

동네 주민이 주인과 마주치면 자존심을 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뒤주를 설치한 초기에는 주민들이 몰려와 큰 혼잡을 빚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가려고 욕심을 부린 탓이다.

하지만 뒤주가 빌 때마다 쌀을 채워 주자 나중에는 한 사람당 두 세끼 분량만 가져갔다고 한다.

운조루 주인은 아무 조건 없이 쌀을 내주고도 으스대거나 생색내는 일이 없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실천한 것이다.

다만, 뒤주에 쌀이 떨어지거나 너무 많이 남으면 며느리들을 혼냈다고 한다.

동네 사람이 쌀을 얻으려다 헛걸음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평소 주변을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않으면 배가 고파도 왕래를 꺼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안 곳곳의 굴뚝을 섬돌 밑으로 낮게 세운 것도 가난한 이웃을 배려한 조처다.

굴뚝을 높여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면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낄 것으로 걱정했다.

굴뚝이 너무 낮으면 연기가 빠져나가기 힘들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아낙네들이 불편함을 겪는데도 그 방식을 택했다.

재벌들이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를 하고서 생색을 내는 요즘 기부 행태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아픔과 고충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나눔 실천이다.

동학혁명, 여순사건, 6·25전쟁 등 격동기를 겪고도 운조루가 해를 입지 않은 것은 타인능해 정신을 대대로 실천한 덕분이다.

6·25전쟁 무렵 지리산 빨치산은 부잣집을 약탈하고 방화하는가 하면 살인도 서슴지 않았으나 운조루는 보호했다.

낙동강 물길이 휘감아 도는 안동 하회마을 담연재도 넉넉한 인심을 상징한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살아온 동네로 서애 류성룡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수백 년 풍상을 견딘 기와집과 초가가 잘 보존된 이 마을 한복판에 담연재가 있다.

높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보이고 안채와 사랑채는 ㄷ자형을 이룬다.

200여 년 전 고택을 1970년대에 복원하기 시작해 인간문화재 신응수 선생이 1984년 완공했다.

담연재는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생일상을 받고 TV 드라마가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담연재는 맑고 편안한 마음으로 학문을 익히면 지혜와 뜻이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탤런트 류시원씨 선친이자 서애 선생의 12대손인 류선우씨가 한학자 도움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류시원씨 본가라는 사실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민박하면서 한복 차림으로 투호 놀이를 하는 등 옛 한국 정취를 체험하기도 한다.

담연재의 진정한 가치와 명성은 담벼락 밖 돌구멍에서 나온다.

집 안에서 넣어둔 엽전이나 지폐를 길 가는 가난한 사람이 손을 넣어 집어가도록 만든 것이다.

구멍은 어른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크기여서 욕심을 부려 많이 집으려 하면 손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돼 있다.

구멍은 비록 작을지라도 각박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부자가 욕심을 줄여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부는 분뇨와 같다. 쌓여 있으면 악취를 풍기고 뿌려지면 흙을 기름지게 한다"는 톨스토이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재계와 노동계, 정부가 운조루·담연재 집안의 마음가짐으로 머리를 맞댄다면 일자리 해법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밥이 민주주의가 되는 세상을 좀 더 일찍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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